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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진화 Sep 26. 2024

남극 빙하코어에 기록된 이산화탄소의 비밀

이 글은 틴매일경제에 발행된 글입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11125879


한여름이었다. 갈증이 나서 하루 종일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탄산수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갑자기 탄산수가 분수처럼 터져 나와 고요하던 집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탄산수를 따기 전에 물병을 흔들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다급히 식탁 위로 흘러내린 물을 행주로 닦는데, 물병에 적힌 경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온도가 높은 경우, 내용물이 넘칠 수 있습니다.’ 


차가운 물은 이산화탄소를탄산수는 물에 이산화탄소(CO₂)를 압력으로 녹인 물이다.  더 많이 녹일 수 있지만 물의 온도가 높아지면 이산화탄소는 덜 녹는다. 방 안의 높은 온도로 인해 탄산수에 녹아 있던 이산화탄소가 물에서 빠져나와 병 안의 빈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그 결과 물병을 열 때 병 안의 높은 기압으로 탄산수를 흔들어 딴 것처럼 물이 철철 넘쳐 흘러나온 것이다. 만약 탄산수를 차가운 냉장고에 보관했더라면, 이산화탄소가 물에 더 많이 녹아 코끝이 찡할 정도로 청량한 탄산수를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병 밖으로 흘러 넘치는 탄산수를 보며 나는 그것이 오늘날의 해양과 대기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구조를 거실, 화장실, 주방, 침실로 나누듯이, 지구에서 탄소가 존재할 수 있는 주요 공간은 대기, 육상 생물, 해양, 그리고 암석으로 나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의미한다. 화석 연료 사용과 같은 인류 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다. 그러나 인류 활동이 없더라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자연적으로 상승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대기와 육상 생물, 그리고 대기와 해양 간의 탄소 교환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변동할 수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탄소 저장소는 해양이다. 이는 남극 빙하코어로 복원한 지난 80만 년 동안의 남극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극 온도 자료에 따르면, 지난 80만 년 동안 약 10만 년 주기로 8번의 상대적으로 추운 빙하기와 온화한 간빙기가 반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시기 사이의 지구 평균 온도 차이는 약 4-5°C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남극 온도 변화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80만 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일정 범위 내에서 변동해 왔다. 평균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는 180ppm에서 280ppm 사이를 오갔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빙하기와 간빙기 동안 각각 다른 양상을 보였다. 빙하기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간빙기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80만년 동안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와 남극 기온변화. 데이터 출처 Bereiter et al., (2015), Jouzel et al., (2007)


이 현상을 아주 단순하게 탄산수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빙하기 동안 온도가 낮아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해양에 잘 녹아들어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한다. 반대로, 간빙기 동안 온도가 높아지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해양에 덜 녹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 활동으로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기체 농도가 증가하면서 지구 평균 온도가 상승하게 됐다. 2024년 1월에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1850~1900년)에 비해 1.45±0.2℃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이 자연적인 변화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지구 평균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해양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만약 이산화탄소 농도 배출량을 줄이지 않고 계속 배출하게 된다면 지구 평균 온도가 점점 더 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해양에서의 흡수 능력 또한 줄어들어 지구 평균 온도 상승에 더욱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탁자 위에 있던 뜨거워진 탄산수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으로 더 이상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오늘날의 바다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차갑게 하여 천천히 개봉하여 드십시오.’ 탄산수에 적힌 또 다른 경고 문구처럼 우리가 지구에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다. 지구의 온도가 더 이상 오르지 않도록 막고 지구를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지난 80만 년 동안 지구가 남극 빙하코어에 기록한 기후 기록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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