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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Dec 13. 2021

새로운 것에 대한 불편함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집 근처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또 낡은 건물이 철거된다. 무겁고 불편한 폴더폰이 디스플레이가 접히는 폴드 폰으로 발전된 건, 고작 10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선물했다. 이제 더는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애태우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정말 사소한 일들이지만,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는 데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스마트 워치가 나의 보행 비대칭성을 검사하여 경고하고, 평균 심박 수를 정리하고, 분당 호흡수를 항시 재고 있다는 건 조금 소름 돋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과학의 발전이 우리 삶의 질을 올려주고 있다는 건, 분명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때로는 이 무시무시한 발전이 조금은 두렵다. 계속 새로운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까 두렵고, 적응하지 못해 무리에서 배제될까 두렵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뇌에 칩을 삽입하고, 각종 장기와 관절을 기계로 갈아 끼우는 생활이 보편화될까 두렵다. 아니, 사실 후자는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보통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지 않으신다. 잘 활용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주로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 하는 표현을 쓰시고는 하는데, 필자는 아직 그런 경험을 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보질 않아 잘은 모른다. 그러나 이해하고 습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깔끔히 포기하기에, 스마트폰은 너무 유용하다.


그러나 그분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하며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필요성을 못 느끼면, 굳이 노력을 들여 새로 배울 필요가 없으니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분들은 배달보다 직접 가서 주문하는 것이 편하고, 버스 시간을 미리 계산해서 집을 나서는 것보다 그냥 정류장에 가서 앉아있는 것이 더 편한 분들일 것이다. 편함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는 항상 이 당연한 논리에 의문을 가졌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답답함을 느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일인데, 조금만 써 보면 이 편리함을 항상 누리고 살 수 있을 텐데 왜 항상 예전 방식만을 고수하는 걸까. 답답하고, 의문스러웠다.


과연, 나는?

서문에도 서술했듯,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빠르게 변할 것이고, 그 후의 10년은 더더욱 빠르게 변할 것이다. 아직은 모든 새로움에 잘 적응하고 있는 내가. 과연 노인이 되었을 때, 머리가 굳는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새로운 것에 완벽히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을까? 자주 사용하는 앱 UI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정말?


아마 아닐 것이다.


어느샌가 내가 느끼는 새로움의 불편함은 내 역치를 넘어, 어릴 때 내가 두려워했던 발전이 현실이 되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새로움은 언제나 신기하지만, 동시에 낯설기도 하니까.


명절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낯설고 두려운 어린아이의 감정은, 어르신들이 새로운 문물에 느끼는 감정과도 유사할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낯선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끔 설계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하지만, 경험은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의 판단과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실 여전히 예전 방식만을 고수하는 어르신들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계속 노력해보고자 한다. 나의 편함이 그분들에겐 불편함이 되고, 그분들의 편함이 내게 불편함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세상의 발전을 따라가는 건 항상 벅차다. 인터넷에는 내 이해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정보들이 항상 범람하고 있고, 그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요즈음 나오는 NFT 같은 신기술들을 보면, 내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걸 포기하게 되는 날이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라는 말,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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