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공간'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지금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곳도, 오후의 달콤함을 더해주는 카페도,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줄 전시장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은 스타디움도,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오른 비행기의 좌석도 우리는 '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하거나 주어지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셈인데요. 여기 1971년에 '공간'을 창조해 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건축사사무소 '空間'그룹입니다. 수많은 건축학도들에게 일해보고 싶은 건축사사무소의 로망이자 한국 근현대 건축의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저번 3편까지의 글은 공간 건축사사무소의 창시자이자 스승인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이야기였었는데요, 이번에는 그의 걸작인 '공간사옥'이 갖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예술 작품을 담게 된 공간
[건축사사무소의 흔적 위, 예술과 상업의 새로운 레이어]
한국 현대건축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공간사옥'은 현재 아라리오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현대미술작품을 품은 갤러리로서 또 상업시설로 쓰이고 있죠. 그렇게 된 배경은 2013년 공간그룹의 부도에 있고, 그 일은 한국 건축계에 큰 파장이었습니다. 제게도 큰 충격이었어요.
'공간사옥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문화입니다.'라며 건축 및 문화예술 원로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건물이 민간기업이나 개인에게 매각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벽돌사옥인 구사옥의 등록문화재로서의 지정 후 아라리오그룹에 매각되었습니다. 기존건물을 최대한 유지하는 조건으로 말이죠.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 여 정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방문한 공간사옥은 전혀 다른 매력으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과거 건축사무소로서의 공간사옥에서 건축설계 수업을 들으며 설레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가는데요, 진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간사옥의 배경과 역사
[벽돌사옥과 유리사옥 그리고 한옥]
공간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의 주춧돌 위에 3대가 쌓아 올린 복합건축군입니다. 사진의 왼편에 위치한 담쟁이 건물이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벽돌사옥이고, 오른편에 보이는 통유리의 건물은 공간의 2대 수장이었던 장세양 건축가의 유리사옥이죠. 그리고 그 밑에 아주 오래된 한옥이 자리 잡고 있어요. 3대 수장 이상림 건축가의 조선시대 한옥 리모델링까지 마침내 하나의 건축군이 됩니다.
벽돌사옥(1971-1977), 유리사옥(1996-1997), 한옥(2002)에 고려시대 석탑까지. 전혀 다른 시대에 지어진 세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렇게나 잘 어우러집니다.
공간사옥이 가진 세 가지 매력
[오래된 한옥과의 어울림을 고려한 흑벽돌의 공간]
'공간사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건물에 대한 독립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함께해야 합니다.
벽돌사옥이 완공되었을 당시의 모습은 큰 도로와 맞닿아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왜 흑벽돌을 사옥 재료로 선택했을까?'에 대한 물음을 이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 이유는 주변 한옥과의 어울림을 위해서였죠. 튀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기왓장 느낌을 가진 흑벽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건축 재료 선정부터 섬세하다고 느껴졌어요.
자신이 건축주이면서 건축가였기에 설계에 대한 고민이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깊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평이 채 되지 않는 건축면적 속에서 그는 공간적 짜임새와 효율을 높이고자 최선을 다했어요. 그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벽돌사옥에 대해 다음 5편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