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108배 하는 29살
#넷째 주 금요일: 4월14일
가장 큰 고민이었던 남자친구와 있었던 다툼도 일단락되고, 아르바이트도 꽤 적응하니 삶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서 마음수련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이전보다 떨어졌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8배를 했고, 기도문으로 전날과 같은 ‘나는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람입니다.‘를 외웠다. 그러나 그 기도문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자꾸 딴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평온한 상태가 굉장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평온함에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을 외우자 진심으로 절과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 상태에 따라 기도문을 달리 외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수련도 불시에 튀어나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잘 지나 보내고자 하는 것이니까 내 마음에 맞게 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108배를 하고,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일을 했다. 일을 하고, 점심에 남자친구와 ‘삼겹살 파티’를 했다. 외식을 하면 최소 5만 원 이상 나올 텐데 집에서 먹으면 2만 원이면 되니 삼겹살은 집에서 구워먹는 것이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 남자친구는 피곤했는지 점심을 먹고 고양이와 낮잠을 잤고, 나는 일을 했다. 그리고 5시쯤 도시락을 싸고 준비해서 아르바이트에 갔다.
이제는 아르바이트에 가기 전에 레시피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음료를 만드는 데에도, 매장 마감 업무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매장에서 혼자 일하는 저녁 6-7시가 더 이상 두렵지 않고, 혹여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연락해서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마음이 편하니 손님 한 명, 한 명이 잘 보이고, 자주 오는 분들은 어떤 것을 마시는지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저녁에 오는 손님들은 자주 얼굴을 본 손님들이 많다. 그리고 가끔은 뭔가 지쳐 보이는 손님에게 따뜻한 눈과 말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름으로 가는 요즘 손님이 꽤 많고, 여름이 되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면 또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여름의 장마에 또 손님이 너무 없어서 지루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인생에서 늘 ’중도‘를 찾아 헤맸는데 사실 중도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해서 중도인 상태는 없고, 인생의 수많은 +와 -들을 합쳐 평균내면 중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 때는 +인 대로, -일 때는 -인 대로 즐길 줄 아는 자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저녁 식사 시간을 거의 한 시간가량 받아서 저녁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후식으로 세븐일레븐에 가서 초코아몬드유도 사 먹었다. 이런 소소하게 행복한 시간이 있어 살 만하다고 느껴졌다. 손님도 맞고, 마감 업무도 하고, 카페 노래방도 즐기다 보니 곧 저녁 10시가 됐다. 하루가 참 빠르다. 적응을 하는 과정 중엔 적응하느라 바쁜 대로, 익숙해지면 익숙한 대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능한 한 자주 소소하게 행복하고 싶다. 내가 누군가에게 소소한 행복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