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는 29살 | 다섯째 주 월요일
108배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피곤하든 아프든 요가 매트를 바닥에 깔고 절을 하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몰랐는데 지난 주말에 만난 친구가 108배를 운동으로 하는 분들도 많다고 이야기해 줬다. 나도 절을 할 때마다 느낀 건데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절을 며칠하고 나니까 허벅지가 조금 딴딴해진 것 같다. 마음도 수련하고 몸도 튼튼해지니 일석이조다!
오늘의 기도문은 또다시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였다. 주변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효과가 가장 좋은 기도문이다. 절을 할 때의 과정이 비슷한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초반에 숫자를 세며 기도문을 외울 때 잡생각이 많이 든다. 여전히 기도문과 반대되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 사람의 이런 점이 이해가 되지 않지‘, ’이 사람의 이런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다가 70-80개 됐을 때쯤 힘들어서 ’그냥 존중할게요‘이런 마음이 든다. 그리고 90개가 넘어가면 기도문이 바뀐다.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내가 그냥 살아있는 것도, 내 주변 사람이 그저 살아있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108배를 하고 개운해진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씻었다.
스트레칭을 할 때 법륜 스님의 말씀이나 정신과 의사 형제인 양브로의 채널을 듣는데, 오늘은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 말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길가에 핀 꽃처럼, 들판에 나무처럼 살아라’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태어났으니까 자기 할 일을 하다가 가는 것, 사람 인생도 별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그 말이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마음은 본래 흔들리는 것이니,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괴롭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마음은 늘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믿을 것이 못 되고, 흔들릴 때 그저 ‘또 흔들리는구나’하고 제삼자처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에 휩쓸려서 함께 출렁거릴지도 모르지만,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며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글을 썼다. 요즘 아르바이트 적응기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들,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는 것이 마음 수련하는 것과 같이 마음을 개운하게 해 준다.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느낌이다. 글을 쓰고, 피곤해서 조금 자고,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오늘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이번주 시험 기간이라고 해서 초콜릿에 쪽지를 붙여 전달했다. 나는 중, 고,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한 적은 없다. 방학 때, 휴학했을 때에 아르바이트를 해봤지 학기 중엔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얼마나 힘들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는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피곤했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참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고, 나는 이제껏 참 편하게도 살아왔구나 싶다. 물론 사람마다 힘든 것이 있으니까 살면서 힘든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옆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손님도 적당히 오고, 마감 업무도 꽤 순조로웠는데 마감 시간이 다 돼가는데도 물류가 오지 않았다. 오늘 안 오려나 하고 있다가 9시 56분에 물류가 왔다… 우리는 10시 마감. 매니저님에게 전화해서 물류가 지금 왔다고 전달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가게 마감을 했다. 이제는 거진 완벽 적응을 한 것 같다. 퇴근을 해도 별로 힘들지가 않다. 아침에 절하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다…
문득 글을 쓰다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올리는 아침, 점심, 저녁 사진을 보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밝히자면 잘 자고, 잘 먹고, 화장실에 잘 가는 것이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록 중에 몸의 건강에 관련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나를 잘 챙겨 먹이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성인이 되면 그 누구도 내 건강을 챙겨주지 않는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은 신경써주기도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벅차다. 나는 나를 잘 챙겨주고 그 후에 내 주변의 사람들도 잘 챙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잘 챙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