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 하는 29살
어제 아르바이트에 다녀와서 기절해서 잤는데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몸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 졸리고 피곤했다. 그러나 나는 최소 3개월 이상은 108배를 할 생각이다. 무언가를 하고자 했을 때 변명은 하지 않고, 그저 한다. 물론 그것이 나의 온전한 선택일 때.
오늘의 기도문은 ‘나는 이미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로 시작했다. 운동으로 절을 시작한 것이 아닌데 절을 할 때면 다리 운동을 하는 것 같다. 허벅지에서 불이 나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보통 절을 하다 보면 잡생각이 날아가고 몸의 감각만이 남는데, 오늘은 어제 떠오른 회사생활의 기억이 계속 따라왔다.
어제 아르바이트 휴식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간이 남아서 e-book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었는데, 책의 초반부에 작가의 회사생활에 대한 회상이 나온다. 책의 작가도 회사를 그만뒀는데, 회사에 다닐 때 회사 사람들이 다가와서 조소 섞인 말투로 “매일 회사에서 스트레칭하죠?”라고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물론 작가님처럼 면전에서 들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출장에 가서 퇴사의 마음을 굳히고 같이 일했던 사람 중 몇 명에게만 그 사실을 알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oo님(나)이 회사에서 맨날 스트레칭하는 거 가지고 xx대리님이 다른 사람들한테 왜 저러냐고 꼴사납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어요.”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좀 건강하게 살아보겠다는데, 그래서 틈틈이 스트레칭 좀 하겠다는데 그게 그리 큰 피해를 준 것일까. 가끔은 나 혼자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때가 딱 그랬다. 내 앞에서는 늘 웃으며 나에게 잘 대해줬던 사람이다. 어려운 거, 힘든 거 있으면 도와주겠다던 xx대리.
그때 내 기도문은 ‘나는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나는 어떤 마음이 좋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그 마음도 좋고, 나쁨이 없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을 뿐.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곳에서 동 떨어진 존재였고, 나 또한 마음 붙이기 어려운 곳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집단을 떠났다. 지난 일이고, 판단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저 나에게 맞지 않는 곳이어서 떠났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떠한 기준, 기억, 마음 모두 놓아주자 생각했다.
평소보다 심란했던 108배를 완료하고, 오늘도 나를 잘 먹이고, 스트레칭도 하고,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했다. 경제적으로 흘러넘치게 풍요롭진 않지만 충분하고, 마음이 평온할 수 있게 매일 아침 수련할 시간이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찾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점심이 되어 식사를 하고, 법륜 스님 말씀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책상 옆에 있는 창문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온다. 아침까지만 해도 비가 왔는데 ‘비 온 뒤 맑음’이라는 말이 딱 맞는 오늘이다. 축축했던 마음이 뽀송해진다. 오후 동안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나와 남자친구는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집중력과 에너지가 떨어져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며 뒹굴거리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쳤다. 하루 중에 소소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또 다른 소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러 저녁 도시락을 싸서 아르바이트에 갔다.
오늘은 매니저님 한 분과 마감을 하는 날이다. 내가 출근을 하고 매니저님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그동안 재료들을 채워 넣고, 쓰레기통도 비우고, 물류도 정리하고, 손님도 맞이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 몫을 할 줄 알아서 믿고 혼자 둘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는 것에 뿌듯하다. 매니저님이 식사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나의 휴식 시간이 시작된다. 오늘 같이 일하는 매니저님은 FM이라서 휴식시간을 딱 30분만 준다. 30분이면 화장실 다녀오고, 나머지 시간을 저녁 먹는 데에만 몰두하면 딱 맞아떨어지는 시간이다. 휴식 시간이 길면 괜히 입이 심심해서 편의점에 가서 후식을 사 먹기도 하는데 오히려 좋다. 밥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일이 익숙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빼앗기지 않는다.
그래도 에너지가 조금 더 필요하고 재밌는 일이 있다면 외국인 손님들이 왔을 때다. 그들은 어떤 메뉴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메뉴판을 봐도 어떤 메뉴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원하는 것에 부합하는 메뉴를 찾아주고, 메뉴를 권유하기도 하는 과정이 보람차기도 하고, 참 재밌다. 오늘은 외국인 손님이 3분 다녀갔는데 아이에게 레몬주스를 사주고 싶은 아버님(참고로 우리 매장은 레몬주스가 없다), 카페인이 들어가 있지 않은 녹차와 우유가 들어간 시원한 메뉴를 찾는 금발의 여성분, 늘 아이스크림이 올라가지 않은 오레오 음료를 찾는 어린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 걸까 생각해 봤는데,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뇌를 자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좋기도 한데, 외국인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는 편이라서 정말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이 좋다.
오늘도 무사히 손님을 맞이하고, 마감 업무를 끝내고 퇴근했다. 일하는 동안 집 냉동실에 있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눈에 아른거려서 남자친구와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남자친구가 저녁에 만나고 온 친구분이 사준 스타벅스 고구마 케이크도 먹었다. 밤늦게 먹으면 밤새 장이 쉬지 못해서 혹은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은 채 몸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피곤하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일탈도 소소하니 행복하다:) 가끔은 내일의 일은 내일 걱정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