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대화
토요일인 어제 아침 고향집에 내려왔다. 나는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아빠를 따라 외국에서 살다가 다시 경기도에서, 대전에서 그리고 청주에 정착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면서 성인이 된 후로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런 나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현재 나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청주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서울에서 오전 10시 버스를 탔고, 1시간 40분을 달려 청주에 도착했다. 터미널로 마중 나온 엄마를 만나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2층에 있는 기사 식당에서 백반을 먹으며 근황을 나눴다. 엄마는 불교학교 경전반에서 하고 있는 배움에 대해 말해줬고, 나는 요즘 마음이 힘들었던 일들, 108배를 하며 들었던 생각들을 나눴다.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큰 수행 과제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요 근래 남자친구와 갈등하며 내가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점점 부모님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나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데 엄마, 아빠는 어떻게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고 사는지 궁금했다. 그 방법을 알면 나도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함께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엄마에게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엄마, 아빠 각각은 존경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엄마, 아빠의 관계를 보면서 나중에 내가 결혼하거나 인생의 동반자가 생긴다면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랬구나! 몰랐네.“
“몰랐어? 나는 엄마, 아빠가 매일 같이 싸우는데 왜 같이 사는 건지 알 수 없었어.”
“그랬구나. 그런데 엄마는 네 아빠랑 살면서 아빠랑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정말로?“
“응. 아빠는 내가 무언가를 할 때 한 번도 하지 못하게 하거나 간섭하는 일이 없었어. 그게 아빠랑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이유야.”
“그렇구나.“
“함께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해 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 엄마는. 너희 아빠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남편이었고, 지금도 그래. 그래서 같이 살 수 있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가 매일 같이 부딪히고, 언성을 높여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럴 거면 왜 같이 사는 건지 의아했고, 차라리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어른이 된 지금 그때를 돌이켜봐도 자식 앞에서 큰 소리로 서로를 질타하며 싸우는 부모의 모습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20-30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이 살아가면서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고, 부딪히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나와 남자친구도 부딪히며 이런저런 것들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가 수행해야 할 것은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요 근래 남자친구와 부딪히는 문제들을 보면 내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데 그 외로움을 상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경계를 침범했다. 즉, 나는 독립성이 부족해서 옆에 있는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 때문에 나 자신도 괴로워졌던 것이다.
앞으로 내가 연습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잘 서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서 있는 상대와 손 잡고 걸어 나갈 수 있다. 내 삶 자체가 상대에게 기대어 있으면 상대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상대가 나를 받쳐주지 않을 때 나는 무너질 것이다.
혼자일 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함께일 때도 행복하고,
혼자일 때 즐거울 줄 아는 사람이 함께일 때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