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하는 29살
#5월3일 수요일 (108배 31일째)
오늘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일어났고, 108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감각이 발달해서 잠귀도 밝고, 큰 소리를 싫어하고, 전자 기기를 오래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너무 찌르는 냄새도 참기 힘들고, 온도와 습도에도 예민하다. 요즘 유튜브를 하는 남자친구가 새벽 5시쯤 기상하는데, 오늘은 아침에 요리 영상을 찍는다고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이 울려서 나도 잠에서 깼다. 잠이 깬 사이에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눈을 붙였는데 설거지 소리 등 다양한 소리에 선잠을 자고 일어났다. 나는 잠자는 것을 조금만 방해받아도 머리가 아프고, 몸에서 열이 오른다. 그리고 이런 날은 아침에 화장실도 잘 가지 못한다. 좋지 않은 컨디션과 더부룩한 배는 나를 가장 예민하게 만드는 Top2인데, 오늘 그 두 가지가 함께 발생했다.
이렇게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할 때 생각을 달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각적인 것도, 감각에 의해 발생하는 감정도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감각에,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108배를 하며 ‘감정과 감각은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을 게 못된다.’를 되뇌었다.
절을 하다가 문득 어제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는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 박해준 님이 스님이 되어 행자들 앞에서 말씀을 하는 상황을 담은 영상이다. 배우 박해준 님이 마음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행자들에게 설명하며 ’내심외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내심외경‘의 뜻은 ’내 속에 있는 걸 밖에서 본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밖에 있는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혹은 즐겁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열망하는 것을 밖에서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 싫을 게 없고, 내 마음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것들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괴로워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고, 감각이 자극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한다. 그런 내가 아침마다 108배를 하고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극에 동요하지 않는 시간이 생기고 있다. 동시에 감정이나 감각에 동요하지 않음이 어색해서 습관적으로 괴로움에 빠져들려는 마음과 생각의 움직임이 있다. 절을 하다가도 습관적으로 괴로워지려고 해서 중간에 기도문을 ‘내 안에 있는 것을 밖에서 본다. 괴로우면 괴로운 것들이 보인다.’로 바꿔 외웠다.
다시 유튜브에서 본 영상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영상의 마지막에 배우 박해준 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 마음이 좋으니) 밖에 싫은 것들이 하나도 없어요. 염소 새끼도 이뻐서 한참을 쳐다보고, 풀떼기도 이쁘고, 그냥 다 이뻐요.“ 나도 요 근래 이런 마음을 조금 맛보고 있는데, 행복하려 하기보다 감정이나 감각에 휘둘리지 않고 괴롭지만 않으려고 노력하니 남자친구도, 손님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그저 감사하고 예뻐 보일 때가 있다. 물론 감정에 감각에 휘둘릴 뻔하기도 하고, 휘둘리기도 하는 시간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괴롭지 않은 시간들이 매일매일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그 시간 동안은 세상이 무해하고, 아름답다.
그러니 내 마음부터 괴롭지 않게 하자.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