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하며 아침에 108배하는 29살
#5월8일 월요일 (아르바이트 8주 차/ 108배 36일째)
요즘 내가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좋지가 않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무기력하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괴롭다. 직장도 다니지 않으니 괴로움의 시간은 더 길다. 아니,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덜 괴로울까? 나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싫었지만 그 시간 동안은 별생각 없이 타인에 의해 움직였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괴로움이 더 크게 왔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작은 괴로움이 회사에 가지 않는 시간에도 지속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각각을 평균내면 느끼는 괴로움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입니다.’가 먹히지 않는 날이다. 그저 태어남으로써 나의 몫을 다 했다는 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나는 SNS를 전혀 하지 않음에도 휴대폰으로 유튜브만 봐도 다들 무언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사람들이 신기해서 연휴와 주말 내내 휴대폰에 빠져 살았다. 아이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작곡, 작사를 해서 신곡을 들고 나오고, 부지런한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운동도 하고, 요리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배우들은 드라마, 영화, 방송, 무대 등에서 활약을 하고, 의사들은 사람들이 나아질 수 있도록 신체, 정신에 관련된 정보를 알려 주고, 누군가는 이런저런 옷들을 구매해서 기깔나게 코디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고, 누군가는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하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데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잠자기 전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무언가 심란해져 별로 졸리지 않은데 잠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깊은 우울이 찾아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중간중간 제정신일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암울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휴대폰을 내려놓자고. 어차피 직장도 안 다니니까 휴대폰만 보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을테니. 아침에 화장실에 가서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가 창턱에 올려놓았다. 아침을 먹다가 무심코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다시 내려놓았다. 무기력함에 침대에 엎어져서 휴대폰을 켰다가 다시 꺼버리고 잠에 들었다.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 집 고양이도 한 번 쳐다봤다. 밥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유튜브를 켜서 노래를 들으려다 멜론으로 노래를 틀고 화면을 꺼버렸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무심코 휴대폰을 켜는 나 자신을 인지하고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은 굉장히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덜 우울한 것 같기도, 본격적으로 우울을 마주한 것 같기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