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 언덕 바위틈에 진달래꽃이 붉은 볼을 비비며 한창이다. 봄기운에 절로 흥이 넘치는 오후녁 긴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인을 품에 안은 한 사내의 모습이 그려진 [운우도첩]중 한 열 번째 그림을 묘사해 보았다. [운우도첩]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첩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분명치는 않다.
봄을 그렸다는 춘화의 뜻은 남녀 간의 성교하는 모습을 그린 남녀상열지사를 나타낸 그림들을 말한다. 아마도 이런 그림에 봄 춘자를 쓴 것은 봄은 태양 아래 풀이 대지를 뚫고 나오는 모습의 한자처럼, 겨울 동안 웅크렸던 모든 만물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에서 온 것 같다. 봄을 타는 사람들. 양과 음의 기운들이 진달래꽃바람에 춤을 춘다. 봄바람에 사랑도 태운다. 청춘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신의 섭리가 아닌까 싶다, 조선시대의 춘화는 꾸미지 않은 세련됨이 있어 좋다.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풍자가 왠지 성은 즐겁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보인다. 단원과 혜원(신윤복) 조선의 그림 천재 두 분이 어쩜 외설에 가까운 춘화를 그렸다니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청포물에 머리 감았던 여인들의 모습도 그 모습을 몰래 엿보던 동자승의 신윤복 님의 그 그림 속에도 풍자와 해학이 숨겨져 있었다. 춘화가 그 시대에 성의 교과서처럼 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움에는 끝도 없고 정해진 틀도 없다. 존재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면 좋은 스승이 필요한데춘화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몰래 봐야 재미있었을 사대부 양반의 시대에 또 다른 묘미이었을까? 종족보존을 위한 성이 아닌 사랑의 기쁨을 찾고 있는 로맨틱 무드를 차츰차츰 배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본연의 흐름. 어쩜 성은 숨기고 왜곡된 그늘진 모습이 아닌 당당하고 유쾌하게 때론 무심한 바위틈의 진달래꽃처럼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이 예술이냐 혹은 그냥 외설이냐는 것은 철저하게 보는 사람의 감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외설로 얘기하기엔 붓의 섬세함이 그림의 구도와 느낌이따뜻하다.
<운우도첩>의 한컷. 운우도첩은 단원 김홍도의 낙관이 찍혀있지만 실은 후대의 작품으로 알려졌다고도 한다.
그동안연락이 뜸 했던 박이자 씨가 생각난다. 그녀는 10살 나보다 위인 한때 같은 일를하다가 만난 사회친구이자 언니였다.사회에 나가면 열 살이고 한살이고 나이의 많고 적음이 그다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숫자적 기술의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 듯하다, 아주 자기만의 색이 강했던 박이자 씨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올블랙이었다. 옷장에서도 무지갯빛은 눈 씻고 봐도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다. 속옷과양발까지도 밤에 피는 장미인양 블랙로즈. 헤어스타일도 검은빛 찰랑찰랑 윤이 흐르는 클레오파트라였다. 그녀가 그러했다. 나에게 그녀 인생의 유쾌한 성을 얘기해 주었고 , 그런 웃음 많은 사랑 얘기들이 춘화처럼 나에게 성 교과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나의 아직도 수줍음 많았던 서른 초에....
박이자 씨의 언니의 이름은 박일자씨라고 했다. 다행히 언니가 남동생을 봐서 박삼자씨는 태어 날 수 없었다고 했다. 가장 웃겼던 실화 중 하나이다,
웃고 싶어 질 때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 눈물 콧물 빼며 들었던 외설들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 아마도 반은 꾸며낸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직도 지고지순하게도 한 남자를 못 잊어서모든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를 그의비교분석표에 넣어서 탈락시키는 싱글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하얀 셔츠 man이 그 잊을 수 없는 주인공 그 남자일 확률이 아주 높다.독일 이모댁을 방문했을 때 만났다고 한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고 트램을 타고 창밖 너머 보이는 회색빛 베를린에 멍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트램안이 환해졌다. 바로바로 백마 탄 왕자님 탑승. 그의 아우라와 함께 하얀 셔츠의 환한 독일남이 트램에 올라탔다. 아~~ 얼마 만에 본 아우라인가!!박이자 씨는 그때의 상기된 볼로 얘기했다. 글쎄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그와의 언어장벽에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그를 보냈다는 것이었다.이상형의 아우라를 보면 그 사람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성교육 아닌 연애교육이었다. 어쩔 수없이 스쳐갔던 각본 없이 나타난 그 아우라맨이 아주 가끔 생각이 난다 했다. 심장이 마구마구 질러대던 아우성을 가다듬으며 힐끔 되었던 어느 오후. 용기를 내지 못했기에 곧잘 외웠던독일 인사말도 못 건네고 트램을먼저내리는 그을 따라 내릴까. 말까 망설이다가트램문이닫혔단다. 예고편 없는 드라마는 잊기가 쉽다. 가버린 아우라맨은 추억에 묻기로 했다.
꽃이 되어 성큼 다가온 이 봄엔 박이자 씨가 진달래꽃 한아름 안기를 바란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
시인 김소월 님은 어떻게 이리도 이별의 애잔함을 진달래꽃에 아름답게 담아 놓으셨는지 모르겠다. 이 시는 내게 이별존중의 느낌표이다. 떠나는 님이 맘 편히 가라고 죽을 만큼 아파서 눈물이 가슴을 채우는데도, 그 이별의 눈물도 참는다고 말한다. 님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하며 가는 길에 꽃을 뿌리며 축복한다고 한다.그런데 그 꽃이 나야 나를 밟고 내 님아 잘 가시오라고 한다.아니 속으론 애원한다, 떠나지 말아달라고 한다, 독하게 참고 있는, 뿌려진 진달래꽃 마저 한아름 님을붙잡는다. 내가 꽃이 되어 뿌려지어 너를 보내고 있는데 참 무정도 하다고 이렇게읊조리는 듯하다. 십리도 못 가 발병 난다고 이것이 버려진 사람의 본능적인 외침이 아닐까싶다.그러나 시인은 스스로 떠나는 님을 위해 꽃을 뿌리면서 승화된 자신의 모습을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시의 언어로표현함으로써 그 이별 앞에서 당당해지려 한다. 죽어도 눈물 안 흘릴 만큼 자신을 강하게 추스른다. 진달래꽃은 매해 봄마다 피는 꽃임을 우리도 시인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별을 존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충분히 아파했다면 그 이별과도 이별해야 한다.님을 보내는 이별의 모습보다는 그 이후 남겨진 혼자를 두려워하는 그 아픔이 커서나를 역겨워하는 님과 헤어져서 무너지는, 진달래꽃은 돌산 바위를 뚫고 꽃이 되어 필 수 없음을 귀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