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냉이꽃 옆에 앉았다

길에서 그리다

by 강승숙

개천가를, 골목을 걸으며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춘천은 날이 차서 꽃이 더디게 피었다. 남쪽이나 인천에 사는 지인 프로필에는 봄꽃 소식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감감했지만 분명 필 터이니 걸을 때마다 두리번 거렸다. 첫 꽃이 피는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어느 순간 개나리 몽오리가 맺혔다. 가만히 만져보았다. 마른 가지에서 나온 그 보드라움이 놀라웠다. 약사천 오솔길에 봄까치꽃이 말간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별처럼 피었다. 분홍 제비꽃이 골목 담벼락 작은 구멍에서 나왔다. 골목을 뒤져도 더 이상 제비꽃은 없었다. 어찌 혼자 만 달랑 나왔는지 모르겠다.


공지천 곳곳에 노란 꽃다지꽃이 가늘가늘 피어났고 물가 근처 바위엔 애기똥풀이 얼굴을 내밀었다. 시에서 조성해 놓은 튤립밭에서는 분홍 튤립 두 개가 곱게 폈다. 자목련도 작은 고구마처럼 꽃몽오리를 쏙 내밀었다.


피기 시작한 꽃은 순식간에 만개했다. 누가 먼저 나오나 셀 틈도 없었다. 우르르 피기 시작했다. 벚꽃 아래에서 젊은 연인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가, 나이 든 어른들이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튤립 꽃밭에서도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나이 든 남자는 아내를 예쁘게 찍어주려고 굼뜬 몸을 애써 움직인다. 애틋하다.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남편과 흥에 겨워 걸으며 풍경을 찍었다. 풍경을 배경으로 둘만의 사진도 찍었다. 보는 것마다 이름을 불렀다. 참새야! 까치야! 오리야! 하고 불렀다. 퇴계교에 이르렀다. 내가 쉬면서 남편을 기다리곤 하는 다리다. 더 걸으면 다리가 아파서 남편만 멀리 있는 마트에 다녀온다. 그 사이 식물을 관찰한다.


봄 풍경을 그리고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축대 아래 흔들리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말냉이다.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다. 꽃은 자잘한데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인다. 말냉이는 그냥 냉이와 달리 이파리가 크고 줄기도 더 굵다. 끝에 모여난 흰꽃은 쌀알처럼 작다.


시원한 초록에 밥알 같은 꽃이 달린 말냉이를 보면 마음이 편하다. 가방에서 그림 수첩을 꺼내 그 옆에 앉았다. 앉은 자리에 해가 뜨겁게 내린다. 우산을 폈다. 펜으로 말냉이 잎을, 줄기를 하나 하나 그려본다. 끝에 모여난 작은 흰꽃을 그린다. 흰꽃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 꽃 중에 젤 이쁜 꽃이 흰 꽃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한 날부터 흰 꽃이 좋아졌다. 어머니는 무궁화도 하얀 무궁화를 좋아했다. 하얀 백합과 흰 진달래, 치자 꽃도 마찬가지였다. 흰 목련, 조팝꽃, 냉이꽃, 흰민들레꽃, 배꽃, 벚꽃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 내게 흰 꽃은 어머니를 그리게 되는 꽃이다. 말냉이꽃에 이끌린 것도 어머니 생각 때문인 듯하다. 말냉이를 그리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그립다. (*)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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