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아가는 것들 2

날마다 봐도 못 보는 것들, 생각지 못한 것들

by 강승숙

남편과 함께 걷는 트레킹은 재미를 더해가고 있다. 마트를 목적지로 둔 걷기이다. 이 트레킹은 (춘천)약사천이나 공치천을 지나기 마련인데 어디를 지날지는 그날그날 사야 할 품목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은 공지천을 거친다. 개천에서 발 씻을 때 쓸 수건이랑 기분 좋게 마실 냉커피까지 챙긴 뒤 길을 나섰다.


공지천에 들어섰다. 몇 걸음만에 남편이 멈춘다. 천변 둔치 산책로를 따라 자라는 '세로티나 벚나무' 앞이다. 꽃이 진 자리에 초록 열매들이 달렸는데 며칠 사이 더 커졌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이 나무... 뭐더라..

-세로티나 벚나무!


내가 발음해 놓고도 번번이 감탄한다. 책을 읽고 나면 좀처럼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식물 이름은 유난히 기억을 잘한다. 북미 원산지인 세로티나 벚나무는 버찌가 열리면 볼만하다. 하나만 터트려도 진한 즙이 종이를 붉게 물들인다. 찾아보니 북미에서는 라쿤이나 주머니쥐, 여우와 검은 곰이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보지 못했지만 분명 직박구리도 세로티나 버찌를 좋아할 거 같다. 나도 이번에는 버찌 맛을 슬쩍 봐야겠다.


세로티나 벚나무는 조금 위험한 나무다. 열매를 제외한 전체가 청산가리 전구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으스스하다. 청산가리 전구체에서 형성된 청산가스는 인체를 중독시킨다고 한다. 남편은 이리저리 보며 세로티나 벚나무 초록 열매를 찍는다. 그런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보여 좋다. 나는 한쪽에 서서 열매가 익으면 종이나 옷감에 물들일 상상을 해보았다. 한 봉지 가득 딸 생각이다.


-이건 또 뭐람?


세로티나 벚나무 아래에는 언제 나왔는지 하얀 풀꽃이 있었다. 남편은 몸을 낮추어 사진을 찍었다. 나는 집중해서 식물 이름을 생각했다. 남편이 검색해서 이름을 알아내기 전 내가 먼저 이름을 말하고 싶었다. 꽃을 보고 잎을 보았다. 잎을 보니 어슴프레 떠오른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톱풀 같은데......


얼른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았다. 서양 톱풀로도 나오고 그냥 톱풀로도 나온다. 구분하기 어려웠다. 더 찾아보니 잎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나온다. 톱풀은 잎이 한번 갈라지고 서양 톱풀은 잎이 두 번 갈라진다고 한다. 잎을 보니 서양 톱풀이 맞는 듯하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서양톱풀의 학명은 아킬레아(Achillea)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아킬레스가 이 식물로 상처를 고쳤다고 한다. 갑자기 이 풀이 귀해 보인다. 어떤 사물이나 식물에 붙는 서사가 얼마나 그 대상을 풍성하게 하는지 새삼 느낀다.


우린 냉커피를 마시며 걸었다. 한낮 기온이 25도까지 오른 날이다. 더위를 느꼈지만 걸을만했다. 천변에는 걷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사람들은 양산을 들거나 모자를 쓰고 걸었다.


걷는데 물가 숲에서 꾸엑꾸엑 소리가 난다. 내내 식물 이름을 물어만 보던 남편이 물 만난 듯 '개개비'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녹음해서 네이버에 올렸더니 알려줬다고 했다. 속으로 감탄했다. 개개비 소리는 꽤나 시끌시끌하다. 그러면서도 정겹다.


어릴 때 꽈리 열매 속을 빼고는 입에 넣어 지그시 이빨로 누르면 끄웩 같은 소리가 났다. 공기 빠지는 소린데 개개비 우는 소리가 꽈리 무는 소리를 닮았다. 그 생각이 나서 개개비 소리를 자꾸 들었다. 어디 좀 봤으면 하는데 영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소리만 녹음했다. 검색을 해보니 연잎 위에 앉아 있는 개개비 영상을 올려놓은 게 있다. 어떻게 그런 장면을 찍었는지 부러울 따름이다.


조금 더 가다 쉬면서 커피를 마셨다. 무심히 개천을 바라보는데 뭔가 떠 있다. 움직인다. 거북이였다. 그만 흥분해서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거북이로 보인 그 생명체는 가뭇없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남편은 자라 같다고 했다.


꿈만 같았다. 문득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자라를 만나서 무슨 얘기라도 주고받아야 할 텐데 그렇게 사라져 버리니 애가 타 한참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공지천을 이십여 년 다녔지만 자라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못 봤을까, 아니면 어떻게 하다가 이번 비로 자라가 예까지 흘러든 건가, 궁금했다. 자라는 논이나 연못에 산다고 하는데 이 맑은 개천에는 어쩐 일로 왔는지 모르겠다. 초계비행하는 헬기처럼 수시로 가마우지가 날아와 개천 바닥을 훑는다. 자라가 가마우지한테 잡혀갈까 걱정했더니 남편이 피식 웃는다.

퇴계교(내가 찍은 사진)(갤럭시S22)

시원한 퇴계교 그늘로 왔다. 넓게 계단식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 남자 하나는 저 쪽에서 길게 누워 단잠을 잔다. 또 한 남자를 위쪽 계단에서 폰을 하고 있다. 시원한 자리에 있으니 더 있고 싶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이 관찰을 하라며 얼른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얼른 그러겠다고 했다.


남편이 돌아오기까지 20여분이 있다. 그냥 그대로 앉아 물멍을 하고 싶었다. 멀리 하늘을 보는데 강아지나 어떤 동물처럼 보이는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참지 못하고 일어나 구름을 몇 장면 찍었다.

내가 찍은 하늘구름(갤럭시S22)


자라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교각 아래로 갔다. 옛날이야기 같은 일은 없었다. 잠시 물멍을 하다가 돌다리를 건너 반대편 길로 갔다. 그냥 천천히 걸었다.


맞은편에는 금계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소피아로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해바라기'생각이 났다. 금계국은 춘천시에서 조성한 꽃밭이다. 금계국은 너무 진한 노랑이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더워지는 날씨에 에너지를 주는 색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내가 서 있는 자리에는 금계국처럼 심어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 개망초 꽃밭이 있다. 마치 누가 심은 듯 금계국과 나란히 꽃밭을 이루고 있다. 노란 꽃은 마음을 뜨겁게 흰꽃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거 같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늘 보는 데 어떻게 이리도 몽우리를 많이 내는지, 그래서 또 가을까지 내내 피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개망초를 가만히 보았다. 이미 핀 꽃 주변에 몽오리가 네댓 개씩 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로는 이파리마다 꽃대가 나오면서 또 몽우리를 품고 있다. 잎 겨드랑이에서 그렇게 꽃대가 올라오고 거기서 수개씩 꽃이 피는 듯했다. 개망초꽃밭은 수많은 야생조류와 생명체들이 깃드는 곳이라고 식물사전에선 설명하고 있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풀숲 대게가 그럴 테지만 개망초밭은 아름다워 벌레들도 기분 좋게 놀 수 있을 듯하다. 개망초는 한 줄기에서 400여 개의 꽃이 핀다고 한다. 지금부터 가을까지...... 내내, 개망초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개망초에 질세라 애기똥풀도 열심이다. 애기똥풀은 까치다리, 젖풀이라고도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궁금한데 아직 사연은 찾지 못했다. 애기똥풀 줄기를 끊으면 노랑 진액이 나오는데 독성이 있다고 해서 조심스럽다. 그 애기똥풀이 벌써 길쭉길쭉한 씨방을 달고 있다. 유액을 조심하며 두어 개 땄는데 꼬투리 하나는 그새 터져서 씨앗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머지는 고이고이 비닐봉지에 넣었다.



남편 사진(갤럭시S23)


그새 손에는 애기똥풀 꽃잎이 이겨지며 노란액이 묻었다. 독사에 물리거나 벌레에 물렸을 때 이 노란즙을 바르면 해독효과가 있다고 한다. 위험할 때 쓰라고 여기저기 피어있나 보다. 애기똥풀은 양귀비과 꽃인데 양귀비과 식물은 전통적으로 진정, 진통효과가 있다고 한다


씨앗에는 제비꽃 씨앗처럼 하얀 물질이 묻어있다. 이 물질이 영양가 높은 '엘라이오좀'이라고 한다. 개미가 애기똥풀 씨앗을 물고는 개미굴로 가서 먹는다. 남은 씨앗은 그렇게 해서 번식을 한다. 제비꽃 씨앗도 애기똥풀 씨앗도 모두 개미 식량인 듯하다. 검색에서는 애기똥풀 씨앗 100 립에 2000원에 팔고 있다. 흔한 풀이라 일부러 심는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사다 심는 이들도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꽃이 예쁘기도 하지만 관상용보다는 약재로 쓰려는 모양이다.


이번 공치전 트레킹에서는 톱풀과 세로티나 벚나무, 개망초와 애기똥풀을 관심 있게 보았다. 개망초와 애기똥풀은 이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발에 차일 만큼 흔해서였고, 아주 오래전 안 이름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새삼스레, 개망초의 꽃대와 잎 겨드랑이를 살펴보게 되었다. 애기똥풀 씨앗도 유심히 보고 만져보았다. 이름을 안 뒤, 이렇게 만져보고 씨앗까지 들여다보는 데까지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 이름을 아는 것으로, 단지 안다고 여기며 여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기는 했다. 그랬어도 이런 마음을 갖게 되어 참 다행이다. (*)


제목 배경 사진 (달래꽃, 남편 사진 / 갤럭시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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