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프터양>을 보고.
어떤 기억은 현재와 밀접하게 닿아있음에도 빠르게 휘발된다. 어떤 기억은 바래고 바랠 만큼 오래된 것인데도 마음 어딘가 꼭꼭 눌러 담겨 언제든 생생하게 꺼내본다. 내게 후자의 기억은 대체로 선형적으로 흐르는 어떠한 사건이라기 보단, 문득문득 나열되는 비선형적인 대화와 함께 와닿았던 감정에 가깝다. 한 번의 따뜻함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로 저장되거나 푸릇했던 어떤 날이 그 공간에 대한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이렇게 나라는 존재는 하찮을 만큼 단순해서, 내게 저장된 기억을 만들어준 주체가 꼭 나와같은 ‘인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면,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영화<her>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이유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으로도 충족되지 않은 내면의 대화 욕구가 극중 사만다와의 대화에서 해소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챗 GPT와의 대화는 그리 달갑지 않은 걸 보면 영상미와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한몫했기 때문이겠지만, 나도 모르는 나의 깊은 생각과 위태로울듯 불안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대화를 주고받을 상대가 있다면 삶은 애틋하고도 풍성하게 다가온다. 적어도 난 그 순간이가치롭다.
<애프터양>의 미카에게, 양은 그런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고 미카에게 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그런 존재였음을 그의 부재가 깨닫게 해준다.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마주한 사람과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허공에 뿌리고 돌고 돌게 되는 말들, 목적을 향한 선형적인 시간. 하지만 돌이켜보면 각자의 기억속에 어떠한 마음으로 남아있는 장면들은, 영화에서 버퍼링이 반복되듯 비선형적이며 단편적으로 쌓여있다. 그 조각들이 모여 그에 대한 존재로 기억된다.
죽음이라고 할 수 없는 이별, 때문에 그리움이라고 할 수 없는 기억. ‘양’에게 감정이란게 없었다 하더라도, 그의 기억과 세상을 보는 따뜻한 방식이 우리 인간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존재하는 걸 기억할 수 있게 해준 그는 오롯이 존재한다. 찻잔 속 찻잎은 계속해서 부유하고, 노래 가사는 떠다니는 바람이 되고 싶어 하고, 애벌레는 곧 나비가 되고, 양은 무가 없으면 유도 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제목처럼 양과의 이별 후, 가족들의 삶은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