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65)

시간을 건너다 ‘똥못‘

by 명재신

시간을 건너다 ‘똥못’


허구많은 좋은 이름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똥못’이라고 했을까요?


쑥섬의 한 시절을 품고, 시간을 잊고 지나가는 유물 이야기 좀 해 보겠습니다.


'똥못'


만식이와 ‘똥못’은 유년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쑥섬의 ‘갱본(바닷가)’에서 엿장수 만식이의 엿과 바꾸어 먹기 위해 눈에 쌍불을 켜고 찾아다녔던 녹슨 납작한 쇠못을 우리는 ‘똥못’이라 불렀습니다.



녹이 슬은 '똥못'의 모양입니다. 쑥섬 '갱본/바닷가'에는 이런 쇠못들이 많았습니다.

녹이 슨 ‘똥못’


쑥섬 갱본(바닷가)에는 이런 쇠못들이 많았습니다.


어쩐 일로 그런 쇠못들이 많았을까요.


녹이 잔뜩 슬어 있었지만, 만식이가 망치로 두어 번 내리치면 속에 남아 있던 온전한 쇠가 드러났던 쇠못이었습니다.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닷물 속에서 녹슬었지만, 신기하게도 엿장수 만식이의 망치 한 방이면 ‘똥못’은 두꺼운 옷을 벗고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우와, 나는 엿이 세 가락이다!"


모처럼 커다란 ‘똥못’으로 바꾼 엿가락을 받아 들고, 쑥섬의 동네 마당인 ‘본마당(보리마당)’을 펄쩍펄쩍 뛰던 눈이 커다랗고 '앞뒤꽁치 삼천리/머리가 짱구인 별명'였던 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남아 있는 쇠의 무게나 크기에 따라 엿가락 개수가 달라졌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기를 쓰고 갱본에 묻혀 있는 ‘똥못’을 캐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눈에 보이지 않던 ‘똥못’은 바닷물이 몇 번 들고 나고, 몇 번의 사리가 지나고 나면 다시 갱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갱본은 숨겨놓은 ‘똥못’을 매번 몇 개씩만 내어 놓으며 아이들이 갱본을 찾도록 하였던 거 같습니다.


쇠못의 순환


‘똥못’은 목선을 만들 때 썼던 납작한 쇠못이었습니다.


판목과 판목을 이을 때 사용하던 납작한 쇠못이 시간이 흐르면서 갱본에 묻혔고, 유물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찾아서 엿장수 만식이가 나룻배를 타고 건너오면 엿 두어 가락과 바꾸어 먹었습니다.


주워도 주워내어도 갱본에서는 ‘똥못’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누가, 언제, 얼마나 많은 쇠못을 버렸기에 그것들이 쑥섬 갱본의 지층에 켜켜이 묻혀 있다가 다시 드러난 것일까요?


‘똥못’은 과거 쑥섬에서 출항하여 멀리 서해 연평도 조기잡이까지 나섰던 목선들이 거센 풍랑과 거친 파도를 견디며 다녀올 만큼 견고하게 목선의 판목을 구성하고 있던 쇠못이었습니다.


대장장이의 손끝에서 잘 다듬어지고, 솜씨 좋은 목수의 망치질로 목선의 판재와 판재를 잇는 데 사용되었지만,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갱본'에 버려지고 바닷물 속에 잠겼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을 것입니다.


만식이 엿가락을 바꾸어 먹기 위해 기를 쓰고 갱본을 뒤져서 찾아내기 전까지는 바닷물이 들고 나는 갱본에서 한겹한겹 옷을 벗으며 당초의 무(無)로 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물상(物象)이 순환의 법칙에 따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듯이 형상을 버리고 있었을 겁니다.


번창했던 쑥섬의 흔적이 지워지듯,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다시 바닷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사진 속에 녹이 잔득 슬은 쇠못을 보실 수가 있을 겁니다. 저런 쇠못을 ’똥못‘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갱본'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아직까지 ‘똥못’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년 시절 만식이의 엿과 바꾸어 먹기 위해 뒤지던 갱본에 아직도 ‘똥못’들이 남아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잠시 갱본을 뒤졌을 뿐인데, 녹이 슨 ‘똥못’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쑥섬의 잊혀진 시간을 잊지 않고 간직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잔뜩 녹이 슬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똥못’은 바닷물 속에서 구르며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쇠의 옷, 똥못의 기억


엿장수 만식이를 대신하여, 직접 돌멩이로 ‘똥못’을 내리치자 거짓말처럼 그동안 입어왔던 녹슨 겉옷이 벗겨져 나갔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쇠는 그 시간만큼의 두터운 갑옷을 벗어냈습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그 안에 잠겨 있던 온전한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원래의 모습이었습니다. 버려졌을 적의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며 두꺼운 녹으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똥못‘은 스스로 ‘똥을 싸서’ 녹의 옷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똥못’이라는 이름 속의 ‘똥’은 잊혀져 가는 시간을 지키려고 쇠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입은 옷이었습니다.


그 옷은 쇠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쇠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똥을 싸서‘ 온몸을 감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을 지켜내기 위하여 '똥옷'을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절겅절겅 ‘엿장수 만식이‘가 쑥섬을 건너오는 시간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쑥섬에 다시 아이들이 찾아드는 시간대를.


<똥못에 대하여>

만식이,

절겅절겅

엿판을

짊어지고 건너오면

집집마다

조무래기들

'갱본'을 뒤지기 시작하고

거기,

철철이 칠산바닥으로

더 웃녘으로는

연평바닥으로 드나들었을

똥못이 건져지고

중선배며 꽁둥이배

그 흔적도 없는 자리에서

엿 한가락으로

바꿔지고

그 아이들

지금쯤 어디서 똥못을

줍고 있는가?


쑥섬의 갱본에는 쑥섬 아이들이 다시 찾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안고 묻혀있는 무수의 시간들이 잠겨있을 겁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