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61)

꿈을 꾸는 보리마당

by 명재신

'꿈을 꾸는 보리마당'


"얼마나 남었드냐"


‘뒷먼’에서 보릿단을 머리에 이고 ‘우첨 골무삭/윗쪽마을 골목길’을 쏟아져 내려오듯이 내려와 ‘본마당/보리마당’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가 반기며 어여 오라고 손짓하십니다.


"얼마 안 남었써라"


할머니는 얼굴에 붙은 ‘까시락/보리 까끄라기’를 떼어 주며 활짝 웃으십니다. 그리고 시원한 '큰샘' 물을 건넵니다.


씩씩한 세 손주들이 흐뭇해 보이나 봅니다.


형이 앞장서고, 둘째와 셋째가 보릿단을 내려놓는 모습이 든든해 보입니다. ‘이고 지고’ 온 보릿단을 차곡차곡 쌓으며, 목덜미에 달라붙은 ‘보리 까시락’을 털어줍니다. 그리고는 안호주머니에서 엿을 꺼내서 '한 볼테기/한 입 가득'씩 넣어 주면서 쉬어가라고 이릅니다.


"몇 행비/차례만 하면 되긋구나"


"할매, 갔다 오께라"


입안 가득한 엿을 오물거리면서 숨을 다스리고는 물을 한번 더 마신 형제는 다시 쑥섬을 오르는 ‘골무삭’길을, 할머니 보란 듯이 차고 오릅니다.


겨우내 ‘뒷먼 보리밭’을 오가며 할머니가 지심을 매던 보리밭은, 오월 말이 되면 보리가 익어서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빠르면 오월 말, 늦어도 유월 중순 전에는 수확과 탈곡을 마쳐야 했기에 오월은 농번기철이라며 학교에서 며칠간 방학을 했습니다.


때를 맞춰서 쑥섬에서도 ‘앞멘/쑥섬 앞부분’에 심어놓은 마늘을 캤고, ‘뒷먼/쑥섬 뒷부분’ 밭에 심어놓은 보리를 수확해서 모두 ‘동네마당’인 ‘본마당/보리마당’으로 날라와야 했습니다.


‘뒷먼밭’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좁고 비탈져서, 지게질을 하기가 어려웠기에 사내아이들은 어깨에 짊어지거나 여자아이들처럼 머리에 이고 날라야 했습니다. 더러는 어른들처럼 지게질을 하거나 어깨에 짊어지기도 했지만, 주로 ‘엄씨/어머니 뻘 여자’들처럼 머리에 이고 날랐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집집마다 서너 명의 형제들이 나서서, 중학생부터 초등생까지 모두 ‘뒷먼밭’으로 가서, 어른들이 베어놓고 묶어둔 보릿단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짊어지고 ‘옹삭한 앞멘 까끔길/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날랐습니다.


그러면 동네마당인 ‘본마당/보리마당’에는 뭍에서 건너온 탈곡기가 설치되고, 1기통짜리 ‘얀마 호이루/엔진 휠’에 걸린 2미터 정도 되는 벨트가 탈곡기의 휠을 돌리면서 보릿단의 알곡들을 탈곡해 주었습니다.


먼저 날라온 순서대로 탈곡이 시작되었기에, 우선 ‘뒷먼’에서 모든 보릿단을 날라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보리를 베고, 묶고, 나르고, 쌓고, 그리고 순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보리를 베는 것은 어머니가 ‘뒷먼밭’에서 맡았고, 형제의 나이 순서대로 크기를 달리하여 짊어지고 내려가기 좋게 묶어주는 것은 막내누나가 해주었습니다.


막내누나는 '뒷먼밭'에 많이 열린 '참딸/산딸기'을 양손 가득 따서 금새 까맣게 얼굴이 탄 동생들의 입속에 한 가득 털어넣어 주었습니다. 잘 익은 '참딸'의 그 달콤함이 입안 가득 번지면서 다시 내려갈 힘을 주었습니다.


세 형제는 그 힘으로 ‘뒷먼밭’에서 잠시 ‘몬당’으로 올라와 좁디좁은 ‘앞멘 까끔’의 좁은 길을 쏟아져 내리듯이 달려서 ‘본마당’까지 내려왔습니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주름이 잔뜩 내린 얼굴의 할머니는, 세 손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보릿단을 어깨에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골무삭’을 빠져나와 ‘본마당’에 들어서면 활짝 웃으며 반기고, 손주들의 보릿단을 받아 쌓으셨습니다.


"인자 엄니도 내려오라고 해라"


마지막 보릿단까지 다 내려오면, 할머니는 얼른 가서 어머니를 데리고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순서가 다 된 모양이었습니다. 탈곡을 시작하면 어른 일손이 필요한 곳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형은 탈곡기 뒤에 서서 쏟아져 나오는 보리짚을 바깥으로 쳐내면, 둘째와 막내는 그것을 받아 ‘본마당’ 바로 아래 ‘갱본’으로 쳐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본마당에서 보리 탈곡이 이루어지던 날의 풍경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겨우내 쑥섬에 내리는 겨울볕을 받아 월동을 잘한 보리순들은 따사로운 봄볕을 받아 ‘참딸/산딸기 일종’이 익을 즈음에는 청보리로 일어나 일렁이다가, ‘보리딸/보리딸기’가 익을 즈음이면 누렇게 잘 익어 쑥섬을 온통 금빛으로 채색하였습니다.


세상으로 떠나 정신없이 살아가다가도, 잠시 눈을 감으면 그곳에는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는 젊은 어머니가 계시고, 그 옹삭한 ‘까끔길/비탈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우리 형제들의 모습과, ‘본마당’에서 활짝 웃으며 형제들을 반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를 탈곡하는 소리와, 그 역동적인 ‘얀마 1기통짜리’ 엔진이 전하는 동력으로 탈곡기가 털어내는 보리와 그 뒤에서 빠져나오는 ‘보리짚’이 휘날리는 풍경이 눈에 잡힙니다.


지금 어른의 눈으로 보면 작지만, 유년 시절의 ‘본마당’은 얼마나 크고 넓었던지요.


보리 수확철에 보리를 쌓아두고 탈곡을 해 대던 동네 마당은 쑥섬의 공설운동장이었습니다.


‘하루받기/손야구’, ‘꺼떼기 치기/막대치기 놀이’, ‘구슬치기’ 등을 하며 놀았고, 여자아이들은 주로 고무줄 놀이를 했었습니다.


이즈음이 되면 그 ‘본마당/보리마당’은 쑥섬 아이들의 노동의 시작과, 어린아이들이 뛰어놀던 커다란 놀이 공간이 문을 활짝 열고 손짓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우리 손주들 고생이 많았다"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내 땅으로 돌아와 육십갑자가 넘은 나이로 고향에 들면, 할머니의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름하여 쑥섬아이들의 ‘꿈을 꾸는 보리마당’이었습니다.




보리마당


살다가 고단한 길을 가다가

쉬고 싶을 때 문득 그리워져 찾아 나서는 보리밭

그 황홀한 불꽃 그 기억 언저리


보리마당에 보리타작이 끝난 뒤 보릿대 검불 그 속에

숨어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마다하고 어린 마음에도

세상 살기 어려울 거라는 예감을 키우면서도 은둔의

싹수를 키우며 나만의 공간에서 저녁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 흘리면서 아무도 나를 못 찾기를

바라며 잠이 든 시간 속에서 아직 누워 있는 꿈을 꾸는.


장대비 내려 시간이 침적되고

은밀의 벌레들이 꿈틀거리도록

여름이 다 지날 무렵 두엄으로 김이 오르도록


잠시의 보릿고개를 넘어 너른 세상을 꿈꿔 온

유년의 그 한 나절의 꿈이 그리워 오늘 보리밭 그 드문드문

익어 나는 보리밭 언저리를 서성대는 것이니


*보리마당 : 쑥섬 동네마당이다. 보리타작을 한다고 해서

‘보리마당’ 또는 ‘본마당’이라 부른다.

출처 :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 80쪽



쑥섬 아이들의 '꿈을 키운 운동장'입니다. 보리를 탈곡을 하던 보리마당은 쑥섬 아이들의 꿈을 꾸는 마당'이었습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