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를 품은 섬
'태를 품은 섬'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胎)를 어떻게 했을까요?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왕실과 민간에서 태를 처리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고 나와 있습니다.
왕실에서는 태를 신성하게 여겨 백자 항아리에 담아 길방(吉房)에 보관한 후, 길지를 선택해 매장하는 장태(藏胎) 방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태를 묻은 장소에는 태지석(胎誌石)을 함께 두어 태의 주인을 기록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민간에서는 태를 산이나 밭머리에 항아리에 담아 묻거나 그냥 묻는 경우도 있었으며, 지역에 따라 불에 태운 후에 강물이나 바다에 흘려 보내는 소태(燒胎) 방식과 태를 깨끗이 말려 보관하는 건태(乾胎) 방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쑥섬과 같이 바다가 있는 섬 지방에서는 어떻게 태를 했을까요?
남해안 도서지방에서는 산이나 밭머리에 묻는 방식은 뭍에서와 비슷한데 해양 환경을 반영하여 태를 바닷물에 띄워 보내거나 갯벌에 묻는 방식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삶의 터전이 바다인 섬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바다에서 얻고 바다로 되돌려 보내주려는 풍습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쑥섬에서는 태를 바다에 띄우거나 갯벌이나 땅속에 묻지 않고 '큰산' 아래 바위굴에 '오가리/옹기 항아리'에 담아 안치하는 방식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풍습이 아니라 우리 섬 사람들이 가진 믿음의 표현이자 자연과 생명의 연결을 기원하는 풍습이었을 것 같습니다.
'큰산'은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존재이며, 쑥섬 사람들은 태를 그곳에 맡김으로써 '큰산'이 아이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해 주리라 믿어 왔던 것입니다.
쑥섬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할머니나 친인척들이 태를 '오가리/옹기 항아리'에 담아 ‘큰산’ 아래 바위굴에 안치를 하면서 모쪼록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소원했습니다.
'동네대밭' 바로 위쪽에 위치한 이 '큰산 바위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깊이를 가지고 길이 방향으로 길게 나 있는 굴이어서 바람과 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굴이 완전히 깊지는 않지만 '동네대밭' 위에 서서 보면 먼 발치로 '오가리/옹기 항아리'들이 보일 정도였으며, 이는 태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유지되는 형태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쑥섬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토록 했는데 그곳이 바로 '당숲'과 '큰산 바위굴'이었습니다.
'자장궂은/개구장이' 저 조차도 그 속에 직접 들어가서 항아리를 들여다 보거나 만져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동네대밭'에 낚시대에 쓸 요량으로 곧고 실한 '왕대나무'를 찾다보면 '동네대밭' 위쪽으로 오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곳에서 '태를 담은 옹기 항아리'를 만나볼 수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일부는 깨어져 있거나 그때까지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옹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고 저희 형제들의 태도 할머니가 받아서 '큰산' 아래에 넣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쑥섬 사람들에게 '큰산'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섬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태를 그곳에 맡김으로써 우리는 '큰산'이 아기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해 주리라 믿었고, 이는 쑥섬마을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신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쑥섬 사람들의 태를 담은 ‘오가리’는 거기 남아 있을까요?
태를 담았던 오가리는 아직까지 외지인의 접근이 어려운 동네대밭 위에 자리하고 있어, 다행히도 잘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오월, 쑥섬을 다시 찾았을 때 탐방로를 벗어나 '동네대밭'의 옛길을 찾아 올라가 보려 했지만, 잡목과 칡덩굴이 엉켜 길을 막고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태 '오가리'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당숲’에서 ‘환희의 언덕’으로 오르는 '깔딱고개' 오른쪽 바위 아래에도 태를 담았던 작은 굴에 남아 있던 '오가리'들이 있었는데, 이번 쑥섬행에서는 더 이상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탄 것 같았습니다. 그곳을 지나며 사진을 찍으면서 어떻게 해서 '오가리'들이 사라졌을까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쑥섬을 ‘꽃섬’으로, ‘고양이 섬’으로, 그리고 기원을 품은 섬으로 모든 탐방객들이 아끼고 지켜 주어야 합니다.
해서, 겨울이 되어 칡덩굴과 잡목이 주저앉으면 태 항아리를 찾아보려 했던 내 욕심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나의 태를 담은 항아리가 어디쯤에 놓여 있을지 가늠해 보려 했던 마음을 그냥 남겨 두려고 합니다.
그곳은 할머니가 지극한 정성으로 비손을 드리던 곳입니다. 우리 형제들의 태가 담겨 있던 자리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다시 찾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기억을 온전한 모습으로 지켜두고 싶습니다.
내 욕심이 아닌, '태 오가리'와 그 시간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도록
나의 태를 품은 섬, 쑥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태를 품은 섬'
큰산 밑에 가면
내 태를 담은 옹기 항아리 어디 쯤 있으랴
동네 대밭 왕대 숲길 지나
큰산으로 접어 들어가면 아직도 온전한 옹기 항아리
우리 형제들 태를 담은 시간들이 살아 있으리
어둠이 들어 앉아 무엇을 기다렸으랴
살아 있는 동안 살아 가는 동안
할머니 살아 뒷먼밭 지심 매러 갈 적마다
지극 정성 허리 굽혀 비손을 하더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우리 귀한 손주님들 명줄 보존해 주시옵고
용왕님께 비오이다
우리 귀한 손주님들 이름 드높여 주시옵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큰산 밑에 가면
내 생을 담은 옹기 항아리 아직도 남아 있으랴
할머니 비손 소리 아직도 들려오랴
출처 : 명재신 제4시집 '쑥섬이야기 9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