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9)

쑥섬에도 ‘큰산‘이 있었다

by 명재신

‘쑥섬에도 ‘큰산’이 있었다‘


쑥섬의 최고 높이는 83미터입니다.


쑥섬 몬당에 있는 ‘멀마산포/머시마 산포’에 가면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쑥섬 정상 (해발 83m)

에베레스트(8848m)

백두산(2750m)

지리산(1950m)’


‘별 차이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쑥섬의 해발 83m나 에베레스트 8848m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재미있는 비교이며 가만 들여다보면 그 말은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지나가면서 탐방객들이 재미있어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공유를 합니다.


쑥섬의 해발 83m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들인 공력이 백두산의 2750m와 지리산의 1950m만큼이나 높다는 의미로도 읽혀지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쑥섬에는 재미있는 지명이 하나 더 있습니다.


‘큰산’이라는 지명입니다.


쑥섬 몬당 어디에도 ‘큰산’이라는 지명이 있을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큰산‘이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해발 83m의 쑥섬에 ‘큰산‘이라는 지명이 붙을만한 지형이 살펴지지가 않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해발 83m 범위 내에서 조금 더 높은 곳일 테지요.


하지만 지금은 잊혀진 지명입니다만 ‘큰산’이라는 지명은 어릴 때 자주 불렸고 그리고 ‘우첨/쑥섬 덤불샘 근처 지명‘ 안쪽 집에 살던 ‘해숙이 큰어머니’가 곧잘 쓰던 지명이었습니다.


‘해숙이 큰어머니’는 일찍이 혼자되시고도 굳건하게 사시던 집안의 큰어머니이셨는데 거의 매일을 우끄터리에 있는 ‘까끔밭/비탈밭’을 드나들며 밭농사를 지으며 사셨습니다. 학식도 높아서 그 연세에 셈도 밝았고 국문도 깨쳐서 못 읽는 책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림 같은 초가집 한 채를 늘 깔끔하게 단속을 하면서 ‘우첨’의 ‘안골무삭/안쪽 골목‘에 사셨는데 사촌 형제들이 부산에서 방학을 맞아 쑥섬으로 오면 그 집에서 자주 놀았습니다.


사촌형제들이 오는 때를 맞춰서 ‘문중 짓밭’이었던 ‘까끔밭’에서 일군 ‘마늘‘이거나 ’참깨’이거나 ‘고구마’를 져 나를 때는 종종 데리고 가곤 했는데 밭에 들어서면서 ‘까끔밭‘에 있는 ’‘큰바구‘와 그 위에 있는 벼랑 쪽을 향해서 늘 비손을 했습니다.


‘짓밭‘은 문중의 대소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할 목적으로 문중의 공동명의로 된 밭을 두고 이름하였는데 문중에 큰 비용이 필요로 할 때는 더러 문중 내에서 개인에게 매매를 해서 개인소유로 돌리기도 했다는데 아마도 그 ’우끄터리 까끔밭’은 그렇게 해서 ‘해숙이 큰집’에서 일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까끔밭’ 중간 즈음에는 ‘큰바구’이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가 뚜욱 떨어져 있었는데 그 바위를 두고 큰어머니는 ‘큰산’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 하면서 실참으로 싸가지고 온 것들을 나눠 먹으면서 ‘고시래‘를 ‘큰바구‘ 아래에다 조심스레 했습니다.


‘큰바구’는 비탈밭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듯했지만 오뉴월 땡볕에 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밭에서 골라낸 온갖 잔돌을 쌓아 놓기도 하고 나름 밭자리를 차지한 몫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해숙이 큰어머니가 비손’을 하는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큰산 신령님 우리 형제들, 집안사람들, 마을사람들 모두 모두 다 잘 되게 해 줏씨요‘


‘해숙이 큰어머니’가 머리를 조아리며 비손을 하던 ‘큰산‘은 도대체 어디에 있던 것일까요?


쑥섬의 오른쪽 위에 있는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곳이 바로 ‘해숙이네 큰어머니’가 ’우끄터리 까끔밭’에 시나브로 드나들면서 비손을 했던 ’큰산‘이라고 하는 지명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큰산’이 쑥섬에 실재하였던 것일까요?


그건 잘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해숙이 큰어머니‘도 전해 들은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해발 83m인 쑥섬에서 그나마 높은 지형을 이루고 있는 곳을 이름하였을 것이라고 유추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꾸 그 ’까끔밭‘ 비탈 중간에 있던 ’큰바구‘하고 연관하여서 ’큰산’의 내력을 말씀하신 것들을 종합해 보면 아무래도 쑥섬에는 ’나름 높은 바위 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끄터리‘에 가면 무수히 많은 바위들이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끄터리 동백꽃길 아래 바닷가에 무수히 펼쳐저 있는 갯바위들은 우끄터리 초분골 위에 있는 어느 곳에서 쏟아져 나왔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크고 작은 저 바위들이 어디서부터 내려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해숙이 큰어머니‘의 ‘까끔밭’에 남아 있는 ‘큰바구’와 함께 그 위쪽 어딘가에서 쏟아져 내려왔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우끄터리’ 바닷가까지 굴러 내려왔고 일부는 구르다가 비탈 여기저기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이구요.


지금은 ‘우끄터리 동백꽃길‘을 만들고 넓힌다고 많이 써 버려서 남아있는 바위들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끄터리 너른 바닷가에 많아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바위들의 출처가 아무래도 ‘큰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럼 그 ‘큰산‘은 얼마나 높았고 언제까지 소나무가 나 있는 곳에 ’높이 솟아‘ 있었던 것일까요?


높이는 지금의 ’해발 83m’ 보다는 높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큰산’이라고 부를 만큼의 높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쑥섬에 입도한 사람들이 들어오고서 ‘큰산’은 쏟아져 내려오지는 않았을 거라는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바위들이 더 많은 시간을 바닷물에 파도에 닳고 닳아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큰산‘이라는 지명을 썼던 내력은 아마도 저와 같이 아직 남아 있는 ‘동네 대밭’ 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 뿌리로부터 거기가 ’커다란 바위산’이 있었을 것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큰산‘쪽으로 탐방코스가 나 있지를 않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그 실체를 다시 관찰할 수가 없습니다만 어릴 적에는 ‘큰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는 길이 하나 ’옹삭하게‘ 나 있어서 ’동네대밭’ 쪽에서 ‘뒷먼밭’으로 오를 때는 주로 그 ‘큰산 길‘을 이용을 했으니 쑥섬사람들은 그 실체를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지금은 잊혀져 아무도 찾지 않는 길 입니다만 그곳에는 ‘동네 대밭’이라고 해서 ’키작은 왕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대나무 낚싯대를 구하기 위해서는 쑥섬의 아이들은 해마다 그곳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곧고 실한 대나무를 구할 요량으로 ‘동네 대밭’을 뒤지다 보면 머리를 쳐들고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은 바위 벼랑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큰산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여전히 커다란 바위산으로 남아 있는 ’큰산‘의 뿌리는 쑥섬사람들에게는 ’당숲’과 함께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기고 쑥섬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태’를 모시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쑥섬에는 ‘큰산‘이 있었다!’


어쩌면 쑥섬에 있었던 ’큰산‘은 높이나 크기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다음 연재에서 다루게 될 ’태를 묻다‘에서 말씀드릴 쑥섬의 ‘당숲’과 함께 ‘높이 모시는 산‘으로의 ’경배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번 길이 다시 열리면 ‘큰산‘을 제일 먼저 찾아가 볼 일입니다.



‘큰산‘


높이가 대수랴


해발 83m의 높이가

뭐가 중하랴


무수의 시간들이 지나도록

쑥섬을 살다 간 사람들

태를 묻어 하늘같이 모셨으니


온갖 날짐승들

깃을 틀게 해 주었으니

뱃길 잡으라

천리 바닷길에 띄워 보낸

천리향

쑥섬 사람들 험한 세상에

길잡이가 되었으니


하늘같이 모셨으니

큰산이라


시간이 상관이랴

잊혀진 듯 살아있는

이름만으로도 드높다.


1992. 5. 21


5월 초에 쑥섬에 갔을 때 ‘큰산’과 ‘동네대밭‘을 사진에 담아 보려고 했으나 원체 잡목이 우거져 있어서 멀리서만 사진을 찍어서 아쉽습니다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