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58)

환상의 돛섬

by 명재신


'환상의 돛섬'



20대 후반에 단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몇 날 몇 일을 마땅하게 소재에 맞는 배경을 찾아내서 녹여내지 못하고 끙끙대는 중에 낮잠이 설핏 들었는데, 비몽인지 사몽인지 돛을 단 섬이 저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섬은 파아란 바다 위를 돛을 달고 움직이는 배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양쪽으로 펼쳐진 하얀 모래톱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였고,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꽃 향기가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가는 듯 했습니다.


섬 한가운데에는 수백 년을 살아온 웅장한 활엽수림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들은 바람을 받아 커다란 돛처럼 펄렁이며 섬을 살아 움직이게 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바닥을 부드럽게 비추며, 그 아래에는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만발하여 섬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너른 바다 위에 떠 있는 꽃섬이 순풍을 받아 둥둥 떠다니며 바다를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어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연이 그려낸 하나의 환상적인 예술 작품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순간, 저는 그 신비로운 섬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아 막혀 있던 글을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단숨에 완성된 것이 바로 ‘돛섬 이야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섬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출항을 해서 파란 바다를 항해하면서 저에게 다가온 것일까요?


양쪽으로 펼쳐진 금빛 모래톱이 찬란한 빛을 내던 그 곳은 현실 속 어디에 존재하는 것이었을까요? 꿈속의 그 섬은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던 걸까요?


혹시, 그것이 쑥섬은 아니었을까요?


현재의 쑥섬에도 그런 금빛 모래톱이 존재했던 것일까요?


만약 있다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래서 원시의 쑥섬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실제로 쑥섬에 모래톱이 존재하는 곳이 있는지를 유년으로 돌아가 기억을 뒤져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쑥섬에도 금빛 모래톱이 존재를 하였습니다. 잊고 지냈던 어릴 적의 기억들이 소환되었습니다.


‘금빛 모래톱’이 있던 자리는 바로 지금의 ‘우주카페’가 자리한 ‘안몰짝 본마당’, 그리고 ‘사랑의 돌담길’이 있는 ‘건몰짝 본마당’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안몰짝‘에 있던 ‘문경이네 작은집’ 마당의 작은 ‘놈시밭/남새밭’에서, 그 옛 흔적을 불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 '놈시밭'의 표토층을 조금 걷어내면, 정말로 보드라운 모래층이 드러났습니다.


그 모래는 바지락과 굴껍질이 오랜 세월 부서져 만들어진 고운 조개껍질 모래였습니다. 얼마나 고왔던지, 손에 한 줌씩 쥐어서 먹어도 될 만큼 곱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모래톱은 바로 ‘우끄터리 삼바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쑥섬의 여자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던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여름이 되면 '머시마/남자아이'들은 ‘안몰짝 선창’이나 ‘건몰짝 선창’ 주변에서 멱을 감았고, '가시나/여자아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덜 닿는 ‘모래샘’ 아래 ‘삼바구’ 근처에서 놀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너른 모래톱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러면 그곳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쑥섬의 뒷먼 ‘오리똥눈디’로 밀려난 가마우지들과, ‘우끄터리 통안’에 숨어 살고 있는 '쑥섬해달'들, 그리고 이름만 남겨진 ‘노루바구’에서 뛰놀던 노루들이 '원시의 쑥섬'에 있는 금빛 모래톱을 마음껏 누비고 다녔을 것입니다.


사람이 들어와 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원시림에서는, 지금은 자취를 감춘 담비와 다람쥐들이 나무를 오르내렸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이 철마다 찾아와 곳곳에 둥지를 틀어 새끼들을 키웠을 것입니다. 그곳은 끊임없는 새 울음소리가 가득한 생명의 낙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많은 동물들은 살 곳을 잃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하지만 한때는 따스한 봄볕 아래에서 온갖 짐승들이 여유롭게 노닐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집이 들어서 있고 길이 나 있으며 온갖 꽃들이 만발을 한 '꽃섬'으로 다시 이름을 얻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들어오는 섬이 되어 있습니다만,

쑥섬으로 향하기 전에, 한 번 그 옛 모습이 어떤 곳이었을지를 상상해 보면 어떨지요?


우리 곁에 그런 섬이 있다는 것으로도 환상적인 것이 아닐런지요. 꿈에서 보았던 그 섬이 현실에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저는 그 섬을 고향으로 두고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바로 ‘환상의 돛섬’, 그 꿈처럼 아름다운 섬을 말입니다.



그리워라 모래톱


그 언젠가는 거기가 모래톱이었으리


안몰짝 칫둥에 지어진 집 자리 거기 무수의 조개껍

질로 만들어진 모래톱 깨끗도 하여라 한 치만 파도

나오는 그 곱던 모래들이 모여 있던 모래톱으로 잔

잔한 나로도 안 바닷물이 드나 들었으리 물새들 종

종 거닐고 해달 오가며 발자국 남기며 먹다 남은

생선들 갈매기 쪼으고 있었으리


사백년 전이었든 오백년 전이었든 사람들 들어와

살면서 시누대 숲 속 집을 지어 위로 오르거나 갱

본*에 방축을 해서 집을 지었을 터


시누대 가득이던 섬에 묵은 원시림 가득이던 섬에

밭들이 일궈지고 몬당에 쑥 캐는 사람들 흥겨웠으

리 해마다 풍물소리 사방으로 날리우고 일백 가구

넘쳐나던 사람들 들어오고 모래톱 자리 집터가 되

더니 모래톱에 찍히우던 바닷새 발자국들 흔적도

없어졌으리.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그 원시의 바닷가 그 시원의

모래톱 찰랑대는 물결 소리 호호하하 뛰돌던 어린

아이들 웃음소리 다시 지천이 되리.


*갱본 : 바닷가의 쑥섬 사투리. 간조로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부분

출처 : 명재신 제4시집 '쑥섬이야기' 페이지 70

쑥섬의 모습입니다. 원시의 쑥섬은 안몰짝과 건몰짝의 선착장쪽에 각각의 너른 모래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91년도 한놀문학회 동인지에 실린 단편소설 '둧섬 이야기'입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