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이야기(62)

비 맞은 수국이 더 이쁘다

by 명재신

'비 맞은 수국이 더 이쁘다'



"엄마.... 가셨다...."


여수 누님의 울음을 참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쿠웨이트 출국을 하루 앞두고 서울 본사 근처에서 직원들과 환송식을 하던 중, 여수 누님으로부터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전화로 받았습니다.


"니 고생 덜 시킬라고 오늘 가신 거 같다..."


떠나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몇 차례 가족들과 여수를 다녀 왔습니다.


어머니의 위중함으로 회사에 여러 차례 출국을 미루어 달라고 요청을 해서 미루고 다시 미루고 있던 출국이었습니다.


더 이상 출국 일자를 미룰 수 없어서 일단은 떠나기로 했습니다.


임종은 지키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회사의 기다림도 있었기에 어머니가 위급하시다면 다시 들어오기로 하고 환송식을 하던 저녁이었습니다.


"어무니..., 저 모레 출국하요...."


이틀 전, 저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뵈러 여수로 갔었습니다.


"얼릉 다녀 오께라...."


하지만 둘째 아들이 출국한다는 말에도 어머니는 미동이 없었습니다.


보름이 넘도록 혼수상태가 계속되고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뵙고 간다는 생각으로 얼굴을 부비고 손을 들어 저의 빰에 가져다 대었습니다만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머니가 혹시 형님을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님은 그해 초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병중에 계신 어머니께는 차마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누님들과 의논 끝에 말씀드리지 않기로 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다른 형제들은 다들 병문안을 오는데, 형님만 찾아오지 않았기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형님의 안부라도 확인하고 떠날려고 마지막으로 목숨의 끈을 붙들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무니...., 형님 기다리고 계시께라.....?"


형님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무니..., 형님.. 올 초에 먼저 세상을 떠났써라..."


어머니의 귀에 대고 조용히 그 말을 건넨 뒤, 잠시 후에 어머니가 반응을 하셨습니다.


"......!"


"잘 해서 보내 줬어라..."


"!"


눈를 의심했습니다.


형님 이야기를 해드리자 혼수상태의 어머니가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보름이 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계시다가, 출국 소식을 들려드렸을 때도 반응이 없으셨던 어머니께서 낮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마지막 힘을 끌어 올려 말씀하셨습니다.


"고맙다...."


어머니는 형님을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차마 넘지 못하고 끝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것은 바로 큰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제가 쿠웨이트로 출국하기 하루 전에 어머니는 당신의 목숨의 끈을 놓고 편안한 모습으로 떠나가셨습니다.


누님들의 말대로 쿠웨이트로 떠나는 둘째 아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어머니는 큰아들을 만나러 저세상으로 떠나가셨던 것입니다.


이듬해 5월 말,


휴가를 받아 고향인 쑥섬으로 들었더니 빈 집 뒤안에 비 맞은 수국이 활짝 피어, 어머니 떠나가신 빈 집을 환히 밝히우고 있었습니다.


'비 맞은 수국'은 그렇게 해서 고향집에서 쓰여졌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어머니 살아생전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던지요.


아마도 지금 즈음이면 쑥섬은 수국축제로 수많은 탐방객들로 문전성세를 이루고 있을 겁니다.


화려하고 멋드러진 수국길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탐방객들이 오월과 유월의 꽃길을 탐방하고 계실 겁니다. 이제는 전국에서 쑥섬의 수국축제를 함께 즐기기 위해 머언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들어오고 있을 겁니다.


한 척 더 진수하여 두 척의 '쑥섬호'가 쑥섬을 찾는 탐방객들을 맞아 수십번을 오가고 있을 겁니다.


그러는 중에도 조용히 저희 고향집 뒤안에서도 어머니의 함박웃음같은 탐스러운 수국이 활짝 피어 있을 겁니다.


비 오는 6월이 되도록, 저희 고향집 빈 뒤뜰을 밝히고 있을 겁니다.



비 맞은 수국


비 맞은 수국이 멋스럽다


아버지 먼 길 떠나시고

빈 뒤안 늙은 감나무 옆 자리

쟁여놓은 땔감 나무 썩어 가는 시간에

빈틈에서도 줄기를 키우고 꽃을 틔워

장대비 잠시 그친 사이에

틔워 올린 모습이

처연하고 그리움만 뚝뚝 흘러 내린다


어머니마저 머언 길 따라가시고

산소 전 들르는 길 잠시 잠깐 와 머무는

빈 고향집 뒤안 빈 남새밭

잡초 여전히 무성한데

그래도 혼자 꽃 피워내어 누구한테 뽐내는 거냐

만고 홀로 자유롭다고


잠시 잠깐 비 개인

비 맞은 수국이 더 이쁘다.


출처 : 제 4시집 쑥섬이야기 107 페이지


큰 누님이 찍어 둔 뒤안 수국 사진입니다
생전에 쑥섬으로 다시 들어가신 어머니를 뵈러 고향집으로 갔을 때의 모습입니다(2014년)
생전의 어머니의 편안하신 모습입니다. 고향집으로 다시 들어가셔서 돌아가시기 2년 전까지 지내셨습니다.
지난 오월 초 연휴에 쑥섬 고향집 뒤안에 다시 자리를 잡고 있는 수국을 찍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주 정도면 피어나 있을 겁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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