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문제 하나 보십시오.
2024년 9월 4일에 치른, 2025학년도 수능 대비 수학 모의평가 문제 3번과 4번입니다. 수학은 문제당 배점이 각 2점 3점 4점입니다. 2점은 쉬운 문제, 3점은 중간 난이도, 4점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3번과 4번 모두 배점이 3점이니, 중간 난이도 문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가요? 1983년 11월 22일 학력고사를 치르고, 1984년 대학 1학년 1학기 때 교양 수학을 들은 이후, 수학은 아예 손을 놔버린 제가 눈으로 봐도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한데, 이 문제가 중간 난이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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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인 이해찬 씨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와 일치하는 ‘교육관’이 하나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 교육부 장관을 했던 그가 ‘수학 교육 과정’ 개편을 주장하면서 말했던 “모든 학생이 어려운 미적분을 풀 필요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솔직히 미적분 지식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현재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간다는 의대만 해도 미적분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문학이나 사학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역사학을 전공한 저에게 미적분 지식은 역사 공부할 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논리적 사고에 필요하다고요?
논리력을 높이는 데, 미적분이 없으면 안 되나요?
예를 들어 서양 음악이 7음계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은 피타고라스 학파가 ‘7’을 완전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7음계 속에서 듣기 편한 조화를 추구한 것이지요. 그것도 분명 ‘논리적 사고 결과’입니다.
만약 이들이 9를 완전수로 보았다면, 서양 음악은 9음계로 발전하지 않았을까요? 한중일 삼국이 5음계를 바탕으로 음악을 발전시킨 것은, 동북아 3국 사상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 사상에서 ‘5’가 완전수였기 때문일 겁니다.
미적분 지식이 없이도 음악 산업은 이렇게 발전했습니다. 가왕 조용필 씨가 미적분을 잘 풀었나요? 요즘 아이돌 그룹 작곡가나 프로듀서들이 죄다 명문대 수학과 출신인가요?
축구 경기에서의 전술 짜기 역시 논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어떤 포진(그것이 442든 451이든, 아니면 완벽한 토탈 사커든)이 효율적인가를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하는 게 축구에서 전술 짜기의 기초입니다.
그럼에도 미적분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미적분으로 인해 수학이 급격히 발전했고, 수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근현대 공학의 바탕이 되는 물리학도 발전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서구 지식인들은 그리 말한다죠?
‘물리학자는 수학자를 경배하고, 수학자는 오직 신만을 경배한다.’
수능에서 수학 문제를 유심히 살피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수능은 결국 우리 미래를 이끌 이 나라의 ‘지적 엘리트’(이 사회에는 지적 엘리트 외에도, 장사 엘리트, 체육 엘리트, 예술 엘리트 등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가 필요합니다)가 될 사람이 어떤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가를 표상하기에. 수학은 그중 자연과학과 공학의 발전에서 근간을 이루는 분야입니다.
한데, 어제 수학 3번과 4번 문제를 보니, 솔직히 가관이었습니다.
기본 개념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 하여 수학 공부를 하지 않은 지 40년이 넘은 제가 눈으로만 보아도 풀 수 있는 것을 출제해서, 이를 통해서 서울대나 카이스트 등의 수학과나 물리학과를 가게 된다면 이게 과연 어떤 변별력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 ‘킬러 문항’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학생들은 이리 부릅니다.) 몇 문제로 결정하면 된다고요? 한데, 과연 그런 방식으로 진정 이 나라 발전의 근간이 될 수학과 물리학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 교육은 전문가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저처럼 ‘그런저런 머리로 건강한 이 사회의 상식인으로 성장하면 그만일 사람’과,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이 사회 극최상위 지적 엘리트로 성장해야 할 사람에게 동일한 수준의 시험을 내서 선발하는 방식이 과연 최적일까요?
예를 들어, 월드컵 축구 국가 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시험에서 ‘축구의 기본 기술’에 대해서만 왕창 살피고, 단 몇 가지 고난도 테스트로 국가 대표를 선발한다면, 과연 그렇게 선발된 친구들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요? 저는 지극히 의문입니다.
저는 ‘이 사회의 극최상위 엘리트’와 ‘건강한 교양 시민’으로 성장할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교육돼야 한다고 봅니다.
저 같은 장삼이사 필부필부는 미적분을 안 배워도 그만입니다. 미적분을 몰라도 교양을 갖춘 시민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 발전의 근간을 이룰 ‘수학이나 물리학 관련 극소수 지적 엘리트’는 훨씬 어렵고 치열한 문제 풀이 과정을 통해 선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보니까.
1968년의 고통스런 사회 혼란을 거쳐 프랑스는 대학을 평준화하는 데 합의합니다. 그 결과? 예, 프랑스에서는 노벨 과학상 분야 수상자가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대학을 평준화시켰는데, 가장 지적으로 왕성하게 성장할 시기의 청소년들이 죽어라고 공부할 이유가 없지요.
수학 포기자, 일명 수포자를 양산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수능 수학은 쉽게 출제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 저 같은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흐름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렵고도 어려운 수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치르는 PISA 시험에서 대한민국의 순위, 즉 경쟁력은 날로 떨어지는 수치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교실 민주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성적이 떨어졌다고 ‘빳다’를 치면 바로 잡혀갑니다.) 과연 이 상태에서 우리가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어제, 수능 대비 전국 모의평가 문제를 보면서 씁쓸했던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과연 이런 수준의 문제가, 1984학년도 학력고사 수학 문항으로 나왔던가 의심하면서 말입니다.
1984학년도 때는 20점 만점의 체력장을 제외하고서도 14과목을 치렀습니다. 그렇기에, 대체로 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넓은 분야의 공부를 얕게 하는 구조’였지요. 한데, 요즘 수능은 자격시험처럼 쉽게 치르는 한국사를 포함해도 6과목입니다. 시험 난이도가, 제가 학력고사를 치르던 때와 비교할 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한데, 수학만큼은 우리 때와 비교할 때 ‘달라진 시험 구조에 걸맞게 어려워진 것’인가 의심하게 됩니다.
인천에서 농사짓는 한미한 사람이지만, 수학과 물리학이 발전해야 이 사회가 발전하고, 이를 통해 내 삶이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기에, 주저리주저리 비논리적인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