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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아 Feb 07. 2023

사택

솔직하게 쓰고 詩 라고 우기면 시가 된다 02


사택


유선아

       



단 향이 가득한 과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이 내려왔다.

동남아시아의 유명한 거리에서 갈아 마시던 수박.     


딸은 수박이 너무 좋다고 한다.

수박 냄새를 알아?

여름이 머지않았으니 곧 수박을 먹자고 한다.

깍둑깍둑 썰어 얼음을 닮은 수박.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시절

극장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캐러멜을 입힌 팝콘 냄새를 가득 씹으며

영화는 채 시작도 하기 전에 빈 통만 남기고.   

  

딸이 편의점에서 극장 팝콘을 사 왔다.

극장 냄새를 알아?

팝콘은 극장 팝콘이 맛있다고 추억하듯 말한다.

와, 그런데 거기서는 진짜로 극장 냄새가 났다.     


큼큼한 페브릭 의자 냄새, 폐쇄된 공간의 맛, 구멍이 뚫린 팔걸이의 촉감

무릎이 닿는 길이, 한 줄기를 따라다니던 먼지, 소리가 나지 않는 카펫.

코팅된 종이컵 안에서 흔들리는 제빙기 소리, 손끝에 스치던 손.     


너와 나는 이제 수박을 마시던 더운 나라에서 떠나

몸이 스치거나 스치지 않는 곳에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벚꽃이 튀겨지는 계절에도 함께 거리를 거닐지 않으므로

일상이 되었다.

팝콘이 튀겨지는 극장이 언제였더라.     


그래도 극장 팝콘을 사다 주며 수박이 좋다는 여자 아이가 있다.

시가 쓰이는 좁은 집과 작은 상이 있다.     


너와 나는 여전히

너와 나인 채로

같은 곳에 있다.







부부가 되는 일이란 일상이 되는 일이다.


일상이란 본디 개인적인 영역이므로 서로에게 일탈이었던 사람들이 일상이 되고 나면

으레 각자 혹은 누군가 먼저 제자리를 찾아간다.


너와 내가 만나 부부가 되면 쀼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삶이 되거나 하나의 인간 비슷한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했으나


너와 나는 여전히 너와 나인 것이다.



* tmi: 팝콘을 튀기는 극장에 가서 얼마 전 함께 아바타 2를 함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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