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쾌락이 끝난 뒤에 오는 허탈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되찾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 내가 한없이 미웠다오. 과연 인간은 한낮 번뇌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후회하고 내일을 바라는 욕망에 사는가 보구려.
미안하오. 삶의 허덕임 속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을 못살아 애태우는 당신을 볼 때 말로써 할 수 없는 미안함이 무언의 고통이 되어 마음속에 부딪혀 온다오.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당신에게 쌓이는 미안함은 잔잔한 파도를 보낸 뒤 안일감이 부딪쳐오면 올수록 더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치는구려.
어느 세월이 되어야 내 마음에 파도가 그칠까 모르겠소. 좀 더 어른스러워진 나를, 부딪쳐오는 현실을 즐겁게 보내버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내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리는 날까지 한없이 빌고 싶다오. 아픔은 아픔으로써, 기쁨은 기쁨으로, 슬픔은 슬픔답게... 아무런 탈 없이 소화해 버릴 수 있는 든든한 마음이 성장하기를 빌면서 작은 빛마저 꺼져버려야 할 것 같소.
잘 자시오. 안녕-
#3-1. 40년이 지난 아빠의 일기를 읽고. 과거와 현재의 아빠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
2023년 2월 21일
'오늘을 사는 일이란.'
아빠.
오늘을 사는 일이란 죄악일까요. 영영 행할 수 없는 삶의 세계일까요. 현실이란 어째서 돌아와야만 하는 고통인가요. 즐거움이 끝난 뒤에 솟구치는 부끄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순간의 쾌락이라는 말이 가지는 시간성이 새삼 놀랍습니다. 쾌락은 순간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어휴, 지겨워. 지겨워.”
기억나세요? 엄마는 자주 지겹다고 말씀하셨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도 시종일관 무엇이 그리도 지겨운지 늘 화가 난 듯 중얼거리셨습니다. 가게에서 일을 하실 때도, 밥을 짓고 찬을 만드실 때도, 청소를 하고 집 정리를 하시면서도 연신 지겹다고 하셨죠. 함께 사는 사람의 지긋지긋한 삶을 지켜보는 것은 고달픈 일입니다. 게다가 당시엔 그 불쾌함의 정체를 도통 이해할 수 없어 엄마의 지겹다는 말이 참 싫었어요. 그런데 그토록 싫어했던 그 말을 이젠 엄마의 딸이 입버릇처럼 하곤 합니다.내가 지금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엄마도 그때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돌이켜보면 엄마는 늘 준비하는 사람이었어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쎴죠. 오늘을 살지 못해 애태우면서도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도망치고 싶어요. 고달픈 현실에서 발을 떼고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이라는 걸 몰라 순간의 쾌락에도 취하고 싶고, 그 순간을 붙잡아 오래오래 누리고 싶은 걸요. 쏜살같이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어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엄마는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삶은 고행이라고 여기면서도 단단히 발붙이고 살아내는 사람이죠. 원하는 오늘을 살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사셨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사는 엄마를 바라보는 게 괴로웠던 것은 부딪혀 오는 현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이 일으킨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오늘을 살지 못하는 건 바로 저예요.
오래전 아빠가 느낀 마음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멀어져 가는 꿈이 안타까워 밀려오는 현실에 치가 떨릴 때, 그런 나와 함께 그런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을 지고 매일을 살아가는 것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일이요. 소화할 수 없는 것을 소화해야만 하는 일이요. 현실적인 면과는 거리가 먼 몽상가들이 겪는 번뇌 말이죠.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다. 아픔은 아픔으로써, 기쁨은 기쁨으로, 슬픔은 슬픔답게 아무런 탈 없이 소화할 수 있는 든든한 마음으로 성장했나요? 세월이 오래 지나면 저도 든든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