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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아 Feb 24. 2023

너절한 봉투에 사랑을 담아

돈 없는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법

     

이사를 준비 중이라 돈이 없다. 살던 대로 살 땐 몰랐는데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을 하려니 생각보다 지출이 너무 많다. 대출이나 이사비 등 큼직큼직한 지출뿐 아니라, 새로운 공간에 맞는 자잘한 지출을 포함해 이것저것 세금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거기에 중계수수료다 뭐다 숨 쉬듯 돈이 나가고 비싼 금리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돈이 줄줄 샐 예정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카드값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곳이 우아한 형제들이었다. 우아한 형제들이 대체 뭐길래 우리 가족이 이토록 많은 돈을 퍼부었는지 영문을 몰라 잠시 당황했지만, 알다시피 우아한 형제들은 배달의 민족을 만든 회사다. 아귀처럼 음식을 시켜 먹느라 가계부가 너덜너덜했다는 말이다.      


1살, 2살 연년생을 코로나와 함께 키우는 것은 옥살이와 다름없었다. 하루라도 바깥바람을 쐬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인간이 발발 기어 다니고 박박 우는 아기 한 명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기 한 명을 끼고 집에만 갇혀 있는 일은 고행이었다. 영혼을 갈아 넣어 육아를 하는 걸 핑계 삼아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밥을 시키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식을 시키고, 귀찮아서 아무거나 시키다 보니 어느새 우아한 형제들의 열혈 신도가 되어 있었다.      


뿐이랴. 어떻게든 밖에는 나가고 싶고,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산골 펜션을 골라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그때는 일단 우리도(남편과 나) 숨 좀 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돈을 펑펑 쓰고 다녀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는 달이 허다했어도 그저 오늘만 버티자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팬데믹이 엔데믹이 될 때까지 코로나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지는 꿈에도 몰랐고.   

  

결혼과 출산이 같은 해에 이뤄지고 바로 다음 해부터 코로나. 이후 몇 년의 소비 습관은 당연히 엉망이었고, 하루살이처럼 사느라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지내다 보니 가정을 이룬 후 모아놓은 돈이 없다. 작년 하반기 초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막막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집값 폭락과 함께 금리 상승 콜라보가 들이닥친 것이다. 운도 없지. 이삿날은 다가오는데 받아야 할 대출 금액은 많고 금리는 올라 이자가 어마어마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있는 돈 없는 돈 심지어 아이들 통장까지 탈탈 털어 목돈을 만들어야 했다. 필요한 만큼의 목돈은 결국 은행이 만들어주지만 이후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가족의 생활습관을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남편과 나. 더 정확히는 바로 나의 생활 습관을.  

    

지금의 소비 행태로는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니 허리띠를 꽉 졸라 매자. 술, 외식, 배달 음식을 끊어보자. 키즈 카페, 베이커리 카페 등 돈으로 시간을 샀던 시절을 뒤로하고 몸으로 부딪히자. 미용실이나 네일샵 같은 사치스러운 기분 전환은 그만두자.

      

그렇게 나름대로 조금씩 습관을 바로잡아 가며 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그러다 어제는 집을 정리는 와중에 봉투에 든 10만 원을 발견했다. 대강의 출처는 짐작이 가지만 짐작하지 않기로 한다. 눈먼 돈 10만 원이 생겼다. 첫째 아이는 할머니댁에 가서 오늘은 오지 않는다. 천우신조 아닌가. 남편에게 돈을 주웠다는 말을 남겼더니 대답은 이랬다.     


“그럼 오늘은 밖에서 밥 먹을까? 돈 주은 사람이 쏘고.”      


역시는 역시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부부가 척하면 척이다. 10만 원이 생겼으니 저축을 하거나 생필품을 사자는 생각은 안 하고 힘을 합쳐 외식을 하기로 한다.     


동네 고깃집에서 배 터지게 밥과 술을 먹고 마셨다. 밖에서 남이 차려주는 식사만이 주는 만족스러움과 함께 계산을 하려는데, 괜히 현금 쓰지 말고 ‘그 돈 그냥 너 해라.’는 허세를 부리며 남편이 카드로 계산을 했다. 매달 카드값 내느라고 쩔쩔매면서. 그래서 돈 봉투는 남편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꽁돈으로 기분 좋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는데, 남편 주머니에 넣었던 돈 봉투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옷이나 신발, 가방처럼 나를 꾸미기 위한 물건을 사는 일이 별로 없다. 심지어 화장도 안 해서 립 틴트 몇 개 있는 게 전부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나를 치장하는 방법이 바로 네일 샵에서 젤네일 시술을 받는 일이었다. 손이 너무 크고 두툼해서 남자 손 같은 것이 콤플렉스손톱을 꾸미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래서 돈이 좀 들더라도 네일샵은 꾸준히 다녔는데, 긴축재정을 시행한 뒤 네일샵가질 못하니 손이 영 볼품없다. 아마도 남편은 그런 내 손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돈 때문에 그나마 하고 싶은 것도 못하는 아내를 보는 가장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너절한 봉투 위에 쓰인 남편의 글씨를 보니 와락 눈물이 났다. 평소 화려한 손톱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부담 갖지 말고 나를 위해 쓰라며 설렌다는 말까지 남겨준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현실에 치여 세월에 치여 흔한 애정 표현도 하지 못하면서 살지만 부부 사이에는 가끔씩 이렇게 끈끈한 사랑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달콤하게 벅차오르는 사랑보다는 마음이 울컥하고 꽉 차는 것 같은 사랑. 측은지심이 동반된 좀 더 광범위한 사랑이랄까.     

 

동생이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하는 것의 장점이 무엇이냐고. 나는 늘 장점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열렬한 사랑은 금방 식어버리고 출산과 육아는 전쟁이며 돈을 따지기 시작하면 지옥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현시점 보통은 괴롭고 대부분은 힘들다. 럼에도 결혼과 출산과 육아가 가지는 가장 특별함이라면 삶의 '희로애락애오욕'을 밑바닥까지 전부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태어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샅샅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모르지만, 특별한 점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결혼이나 출산이나 육아 모두 개인 선택의 문제이므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지 판단할 수 없지만, 곧 가정을 꾸리려는 동생에게만큼은 은 미소를 담아 이렇게 덧붙여 본다.

    

“혼자 있으면 안온하지만 자주 웃지는 않잖아.

그런데 같이 있으면 자주 울기도 하지만 자주 웃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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