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많은 전공 중에서 디자인, 그것도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지 그 생각 과정에 대해 가볍게 공유하려고 해요. 전공을 고민하는 분들이나 산업디자인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공감이 되길 바라면서.
1. 예고 때 전공을 디자인으로 골랐던 이유
제가 나온 예고는 2학년이 되기 전에 전공을 골라야 했어요. 1학년 때 4개의 전공(디자인, 동양화, 서양화, 조소)을 짧게 경험해 보고서 1학년 말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때 저는 디자인으로 전공을 골랐어요. 이유는 너무 뻔할 수 있지만, 4개 전공 중에 등수가 가장 높게 나왔기 때문이었어요.
디자인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전공들보다 과감한 구도나 요소를 추가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참고로 여담이지만 서양화는 등수가 뒤에서 10등 안에 들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이야 웃지만, 예민한 고등학생 시기에 그 등수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창피했죠. 그렇게 서양화는 강제 포기 당했어요.
물론 전공을 정한 후에도 전과라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저는 쭉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미술 잘한다는 예고 안에서 저는 대단히 타고난 감각도 없었고, 손이 빨랐던 것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가끔씩 등수가 높게 나왔던 기억은 나요. 디자인과 36명 정도에서 2등을 했을 때, 제가 그렸던 게 뭔지 아세요? '멀티탭'이었어요.
그때부터였을까요, 높은 등수가 좋았던 건지 기계를 그리는 게 좋았던 건지 구분은 안 갔지만 저는 물건을 그릴 때가 제일 좋았어요. 포스터, 패션, 그리고 공간을 디자인해보기도 했지만, 가장 재밌던 것은 물건, 가구, 기계를 그리는 거였어요. '어떻게 생겨야 더 사고 싶을까?'라는 상상과 함께 그리는 게 왠지 모르게 재밌었어요.
2. 대학 입시 때 산업디자인을 골랐던 이유
대학 입시가 시작되고, 선생님께서 '너는 어떤 전공을 하고 싶니'라고 질문했을 때 저는 '산업디자인'이라고 답했어요. 사실 제가 대학 입시할 때는 '시각디자인이 제일 커트라인이 높고, 그다음 산업디자인... 그다음이...'라는 경쟁률에 기반한 커트라인이라는 게 과마다 존재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나는 안전하게 00 디자인을 써야 될 것 같아.' 라던지, '나는 모의고사 점수가 높게 나와서 수시는 00 디자인 써보려고...'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볼 수 있었어요. 대학 입시도 저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점수에 맞춰서 전공을 정하는 마음도 이해 돼요. 하지만 산업디자인 말고 다른 전공을 한다는 상상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재수를 하더라도 산업디자인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3. 다시 돌아가서 전공 고르라고 하면 넌 산업디자인 고를 거야?
다행히 원하던 산업디자인학과에 합격하게 되었어요. 첫 학기에는 산업디자인과 안에서 수석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 졸업 작품을 홍콩 대학교에서 전시할 기회도 가졌었어요. 돌이켜보면 이렇게 기쁜 일들도 있었지만, 부족한 저의 모습에 좌절하고 눈물 흘리며 속상해했던 날도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어느 전공을 골랐어도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회는 안 돼요.
대학교 3, 4학년 때를 떠올리면, 실리콘 몰딩, 목재 깎기, 3D 프린팅, 후가공 등 힘을 써가면서 해야 됐던 과제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야작(야간작업)을 하면서 동기들끼리 이런 질문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나요. 실패한 실리콘 몰드를 버리며, '아, 진짜 힘드네, 생각보다 취업도 어렵고... 다시 돌아가서 전공 고르라고 하면 난 산디 절대 안 해. 너네는 어때? 너네는 산디 다시 고를 거야?'
물론 몇 명의 빛나는 감각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과라고 인식되는 게 디자인과일지 모르지만, 감각이 뛰어나지 않은 저 조차도 산디를 전공하면서 충분히 재밌었다고 기억해요. 아이디어를 내고, 손수 제작하고, 발표하고 피드백받고, 이 과정이 쌓이는 게 기분 좋게 했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돌아가서 고른다고 해도 산업디자인을 고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