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데려왔다. 당시 보호자 할아버지가 1개월도 안 됐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족히 2개월은 넘었을 듯 하다.
강아지는 보통 생후 3주 이후부터 최대 1년까지 사회화 기간이고 그 기간에는 다른 동물들과의 교류, 특히 부모에게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그걸 몰랐을 재롱이 엄마의 보호자, 또 우리 가족은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재롱은 나, 할머니, 동생과 함께 집에 왔는데 그 이후에 보는 모든 사람들(아빠나 삼촌, 동네 아주머니)에게 냅다 짖기부터 시작했다. 반려동물 관련 티비 프로그램도, 정보도 부족했던 때여서 목소리가 크고 많이 짖는다고 꾸중을 들었다.
입질도 심한 강아지라 집에 낯선 사람이라도 들어오면 우렁차게 짖으며 발을 응징했다. 처음 아빠나 삼촌이 물렸을 땐 재롱에게 엄청 화를 냈는데, 그들은 나에게 더 크게 응징당했다. 누구라도 우리 재롱에게 화내는 건 참지 못하는 일종의 고슴도치였던 거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는 ‘쟤(재롱) 건들면 쟤(재롱언니)가 가만히 안 있는다.’는 소문이 왕왕 돌았다. 덕분에 나는 재롱의 든든한 빽이 되어버린 거다.
동네에는 인적이 드문 작은 공원과 사람과 강아지가 많은 큰 공원이 있는데 재롱의 우렁찬 목소리와 겁 많은 성격 덕에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과 공원으로 산책을 했다. 보통 그쪽으로 산책을 오는 강아지들을 보면 대게 재롱처럼 겁이 많고 목소리가 크다.
재롱은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강아지, 고양이를 보면 참지 않고 대들려고 한다. 그럴 때면 상대 강아지와 보호자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최대한 멀리, 호다닥 지나간다.
그러다가 가끔 재롱같은 강아지라도 만나면 그곳은 거의 아수라장이 되는 거다. 강아지들은 너 살고 나 살자며 짖고 보호자들은 혼미백산하며 강아지를 이끈다.
그렇게 토네이도같은 아수라장이 지나간 후 고요한 길을 재롱과 걷는다. 여름에는 풀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조심하고 겨울에는 염화칼슘을 조심해야 한다. 봄, 여름의 풀숲에는 진드기가 가득하고 염화칼슘은 재롱의 발에 상처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잦은 겨울, 염화칼슘은 어딜 가나 뿌려져 있다. 재롱 발에 접착식 붕대를 감아줘보기도 했는데 고장난 강아지인형처럼 걷는 모양새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강아지의 발바닥은 생각보다 많은 기능을 한다. 온도 조절은 물론이고 중심 잡는 것도 발바닥의 역할이고 작은 발바닥에 생각보다 많은 신경이 자리하고 있다.
재롱은 특히 가을의 낙엽 밟는 걸 참 좋아한다. 낙엽이 치워진 깨끗한 길을 놔두고 굳이 낙엽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 한참을 바스락 바스락 밟아대며 냄새를 맡는다. 겁이 많아 특히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강아지인데 재롱은 낙엽 소리가 좋았나보다.
때문에 재롱은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듯 했고, 갈색의 옷이 제일 잘 어울리는 강아지였다. 재롱이 사람이었다면 틀림없는 ‘가을 웜톤’ 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