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롱언니 Dec 26. 2023

4. 언니는 이제 만두를 못 먹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기본 덕목은 ‘민첩함’이다. 이 민첩함이 제일 필요한 순간은, 사람의 음식을 먹다가 떨어뜨렸을 때다.

사람이 먹는 음식 중 강아지가 함께 먹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정제되고, 첨가물이 가득해서 강아지 몸에 좋을 게 없다.

사람 입에 조미료 맛이 거의 나지 않게 소량만 들어갔다고 해도 작은 몸의 강아지들에게는 많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런 것들이 강아지들을 아프게 한다.

보통 어르신들은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강아지가 애처롭게 바라본다며 조금씩 떼어주곤 한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할머니랑 많이 다퉜다.

할머니는 ‘저렇게 안쓰럽게 쳐다보는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주장을 했고 나는 ‘안쓰럽고 말고를 떠나서 그건 얘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라는 주장을 했다. 덕분에 재롱은 아기 강아지일 때 사람 음식을 실컷 맛봤고, 내가 조금 크고 재롱이 아프고 난 이후에는 철저하게 ‘강아지 음식’만 먹었다.


재롱이 8-9살 쯤 됐나, 할머니와 시장에 갔다가 사온 만두를 먹고 있었다. 나는 음식 중에서도 만두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라 찐만두, 군만두, 만둣국 가릴 거 없이 좋아했다. 때문에 우리집 냉동실에는 늘 비비고 냉동만두, 닭가슴살 만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사온 만두도 내가 즐겨먹던 동네 가게의 만두였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만두를 먹던 그 날은 왜인지 식탁에서 먹지 않고 냅다 바닥에 앉아 좌식 테이블 위에서 만두를 먹었다. 재롱은 옆에서 먹음직스러운 만두 냄새에 이리 킁킁, 저리 킁킁 하긴 했지만 막 달려들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할머니가 주먹만한 만두를 한입 먹고 테이블에 잠시 올려둔 걸 재롱이 홀랑 가져가서 먹어버렸다. 진짜 순식간이었고 가족들이 놀라서 어 어 ?? 하니까 재롱도 덩달아 놀라 씹지도 않고 그 통만두를 냅다 삼켜버렸다. 


만두피나 고기소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많이들 알다시피 양파는 강아지에게 치명적이었고, 만두에는 양파가 들어있었다. 강아지들마다 다르지만 소량으로도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나는 먹던 만두를 집어 던지고 동네의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구토 유발제를 사용해서 만두를 토해내게 했다. 재롱이 고통스럽게 만두를 토해내는 모습을 보는 게 안쓰럽고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했다. 일주일 후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혈액검사까지 했다. 


그런 만두 사건이 있고 다음날, 나는 출근해서 점심으로 만둣국을 먹었다. 그리고 체했다. 물론 시간이 모자라 급하게 먹은 이유도 있다. 

그 이후로는 만두를 보기만 해도 체기가 올라오는 느낌이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환장하다시피 좋아한 만두가 더이상 끌리지 않는다. 냉면과 만두는 환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돈까스로 충분하다.


나는 아직도 만두를 보면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작가의 이전글 3.재롱은 겁쟁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