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영혼있는 공무원이 낫다
내비게이션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직원의 이야기
수습직원일 때 조직 내 두 번째 어른과의 티타임이 있었다. 그분은 나름 후배들 앞에서 선배로써 공직생활에 대한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고 한마디 시작하셨었다.
"요즘 공무원에게 영혼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전혀 아닌 이야기들이야.
공무원은 영혼 없이 위에서 시킨 일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해. 영혼 있는 공무원은 힘들고 피곤할 뿐이야.
여러분들도 그렇게 영혼 없이 떨어지는 일들을 잘해 결해내는 훌륭한 공무원이 됐으면 좋겠네"
한 9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황당함과 어이없음, 불편함과 거부감이 지금도 생생히 느껴질 정도의 일이었다. 심지어 그 말을 들은 동기 중에는 마치 대단히 의미 있는 조언을 들은듯한 표정으로 그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기도 했다.
(공무원과 공직에 대한 여러 부정적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 사건중 하나였기는 하다. 그리고 그 말을 한 분은 지금도 종종 텔레비전에 나와 본인의 투철한 공직관과 나라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기도 하시던데 그럴 땐 살짝 채널을 돌리곤 한다.)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어야 한다니. 공무원에 한정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영혼이 있는 귀한 존재가 아닌가. 어느 부모님이 자식에게, 어느 선생님이 제자에게 영혼 없이 주어진 일에 임하라고 말하겠는가. 그분은 까마득한 후배들을 쓴 적이 없어 반짝거리는 부속품정도로 봤던 것 같다.
자기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만 잘 수행하는 부속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맡은 임무를 제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해내는 부속품말이다.
물론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해야 된다는 것은 조직의 일원으로서 기본은 맞다. 그렇다고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것이 마냥 조직이나 상사가 시킨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심지어 영혼까지 없애가면서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 영혼 없이 업무를 하는 사람은 내비게이션이 시킨 대로 어떻게든 목적지로 가겠지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뉴스에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다가 뻘밭에 빠져 차를 버리고 탈출해야 했던 운전자의 이야기를 본 것 같다.)
법륜스님은 어느 강연에서 아무리 시킨 대로 가지 않아도 화내지 않고 다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야말로 진정 부처님의 마음이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내비게이션의 입장이 아니라 그 말을 듣고 따르는 운전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목적지만 입력하고 나면 어떻게 거기까지 가야 할지, 가는 길에 어디를 지나게 되는지, 더 나은 길은 없는 것인지 우린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내비게이션이 가장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지 말자던가, 모든 길을 일일이 확인하고 검토하여 길을 나서자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내비게이션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길이 막히지 않으면서도 단시간에 목적지로 갈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알고리즘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주는 길이 어떻게 목적지로 빨리 가는 길이 되는지를 살펴는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동작대로를 타면 되는데 한강대교를 타라고 네비가 알려준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안다면 다음번엔 동작대교로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면 이번에는 별 문제가 없어서 최단거리로 안내를 해주는구나 그 상황을 상대적으로 명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끔은 최단거리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른 길을 거쳐 갈 수도 있는데 내비게이션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은 사람은 주어진 길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심지어 안내해 주는 길도 잘 모르고 그냥 다니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런 태도는 필요한 일에 대해 많은 것을 남에게 맡기고,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고민해보지 않는 태도와 사고를 고착화시킨다고 생각한다.(내비게이션 안내대로 간다고 너무 오버해서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추측정도로 넘어가주시길 바란다.)
업무에 있어서도 그렇다.
상사나 파트너가 어떤 일을 부탁하고, 초안에 대해 수정 혹은 보완을 요청했을 때 분명 그 안에는 어떤 목적과 이유가 존재한다.
상사에게 보고하고 나서 보고서가 빨간펜이 한참 춤을 추고 난 무도장이 되는 경우가 있다. 상사가 급한 마음에 문구와 배치 등을 수정해 주면 밑에 사람은 빨간 글씨가 가득한 보고서를 성경처럼 옆에 두고 그대로 타자를 쳐서 보완해 간다. 그 과정에서 부하가 가지는 어떤 고민과 생각은 큰 의미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고서를 고치는 것을 좋아하지도, 잘 실행하지도 않는다.(참고로 회사에서 나는 그리 일을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지는 않으니 자랑을 하기 위한 밑밥은 아님을 말해둔다)
왜 보고서를 그렇게 써야지 본래 그 보고서의 목적에 더부합하는지 명확히 와닿지 않으면 그저 누가 생각한 것과 그렇게 쓴 글만을 옮겨 쓸 뿐이라면 나라는 사람은 대체 왜 있는 건가.
그래서 나름 고민하고 문구를 재수정하여 보고를 다시 들어가면 문구의 토씨 하나씩을 가지고 시킨 대로 고치지 않았다고 역정을 내는 상사를 종종 만났다. 그럴 때마다 영혼 없이 시킨 일을 잘하는 핵심인재를 역설하신 옛날 그 어른이 생각난다. 내가 무척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10년이 되는 동안 그런 행태를 고치지 않은 나의 고집도 문제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난 내 보고서에 내 영혼을 넣어 작성하고 보고하고 싶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많이 이탈했을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효율적인 길, 합당한 길이 분명 있고 그 길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한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가 있기에 아직까지도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모든 지시에 그렇게 삐뚤게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목적지로 가기 위한 합당한 길이라 생각되고 그 길과 방법이 타당하다는 컨센서스가 있을 때는 그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의 업무에 영혼을 넣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스스로 당당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을 아무리 울려도 내가 목적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업무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옳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너무 이상적이거나, 너무 업무를 잘 모르는 상사의 이상한 지시가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똑똑하고 합리적인 상사가 합당한 지시를 하는데 그걸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문제직원일 것이다.)그래서 앞에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넣어 주어진 경로를 확인해 보고 가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스스로 그 길이 맞는지 알아보고, 확인할 수 있어야 안내에 더 잘 따를 수도 있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역량은 자신의 업무에 영혼을 담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그렇다고 영혼을 갈아 넣지는 말자. 실제로 그래본 적도 있지만 남은 것은 넝마가 된 몸과 피폐해진 마음뿐)
옳은 생각으로 옳은 방법을 말하더라도 상사에게 혼이 날수는 있다.(사실 자신의 말에 토 다는 부하직원을 그리 아끼고 좋아하는 상사가 있다면 그분이야말로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생각한다.) 혼이 나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는 슬픈 이유를 고된 업무를 해내는 자신에게 갖다 붙이기는 부끄러울 거 같다. 이 이야기가 모든 직장인들에게 다 통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면 좋을 거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까 이야기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많은 직장인이 영혼을 담아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서 나름 고민하고 문구를 재수정하여 보고를 다시 들어가면 문구의 토씨 하나씩을 가지고 시킨 대로 고치지 않았다고 역정을 내는 상사를 종종 만났다. 그럴 때마다 영혼 없이 시킨 일을 잘하는 핵심인재를 역설하신 옛날 그 어른이 생각난다.
내가 무척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10년이 되는 동안 그런 행태를 고치지 않은 나의 고집도 문제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난 내 보고서에 내 영혼을 넣어 작성하고 보고하고 싶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많이 이탈했을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효율적인 길, 합당한 길이 분명 있고 그 길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한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가 있기에 아직까지도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모든 지시에 그렇게 삐뚤게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목적지로 가기 위한 합당한 길이라 생각되고 그 길과 방법이 타당하다는 컨센서스가 있을 때는 그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의 업무에 영혼을 넣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스스로 당당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을 아무리 울려도 내가 목적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업무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옳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너무 이상적이거나, 너무 업무를 잘 모르는 상사의 이상한 지시가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똑똑하고 합리적인 상사가 합당한 지시를 하는데 그걸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문제직원일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넣어 주어진 경로를 확인해 보고 가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스스로 그 길이 맞는지 알아보고, 확인할 수 있어야 안내에 더 잘 따를 수도 있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역량은 자신의 업무에 영혼을 담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그렇다고 영혼을 갈아 넣지는 말자. 실제로 그래본 적도 있지만 남은 것은 넝마가 된 몸과 피폐해진 마음뿐)
이 이야기가 모든 직장인들에게 다 통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면 좋을 거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까 이야기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많은 직장인이 영혼을 담아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