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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노 Apr 09. 2024

부전자전, 날 닮은 너

너에게서 나를 보고, 배운다

임창정이 부른 '날 닮은 너'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자신을 닮은 연인에 대한 민과 그럼에도 곁에서 바라보며 사랑해 가는 마음을 부른 노래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곡의 가사가 전혀 다르게 읽히고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느 순간 들었다


세상천지  자식만큼 날 닮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다. 우주적 관점과 평행이론적 해석 등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확률상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멀리 내다보지 않고 내 주변 세상을 바라본다면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내 아이만큼 나를 많이 닮은 사람이 있기는 어려울 거 같다는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해보자)


다시 임창정 노가사로 돌아와서, 사무실에서야 그러기 어렵지만 종종 혼자 하는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의 산책 시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머 나이가 들고나니 새로운 노래들은 와닿지도, 입에 붙지도 않고 학창 시절에 한창 불러댔던 추억의 노래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혼자나 들릴만하게 불러대며 산책을 한다. 거의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노래들이다. 그날도 점심을 가볍게  빵하나로 해결하고 광화문광장을 걸어가며 왠지 생각이 나는 임창정의 노래들을 하나씩  불러대고  있었다.


"날 닮은 너를. 부족한 너를~ 그저 바라보기엔~~"

"나의 과거와 너의 지금과 너무도 같기에~ 두려워 겁이 나~~"

"날 이렇게 뿌리친대도, 너의 손을 놓지않을 거야"


이 곡에 대한 이해나 경험여부를 떠나 자식에 대한 것으로 치환해서 저 가사들을 읽어보면 어떻게 느껴지는가.

그날따라 저 가사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내 입장을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코네네하러 가자는데 왜저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저건 날 닮은건 아닌듯)

보여준 적도, 알려준 적도 없지만 어쩜 내가 부렸던 그 지질한 고집들을 거의 그대로 부려대는지.

그 끝없는 장난기는 아직까지도 아재개그를 날리며 매운 고추를 아무렇지 않게 먹으면 아에게 자상히도 권하는 아비에게서 벗어난 것 없이 옮겨간 것만 같다. 그것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행동들까지 정말 내 자식이 맞는구나라고 다시깨닫게 는 순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저 아이가 진정 내 자식인가 의심하는 수많은 순간도 있지만 이글에서는 잠시 그 순간들을 차치해 두자)


사실 그런 순간들이 좋은 의미와 훌륭한 점에 있어서 인지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자식에 있어서 나와 닮았구나라고 인지하게 되는 순간들은 그리 좋은 의미와 훌륭한 점에서 비롯되진 않는 거 같다. 어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성격, 생각, 행동  등에 있어서 그리 똑같이 하는지 유전은 신비하기만 한 거 같다.


자신의 안 좋은 부분을 닮았을 때 그 실망과 안타까움, 조금 더 나아가면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분노까지도 느껴지는 감정은 자식을 키우는 많은 부모가 분명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겁없이 궁금한건 꼭 확인을 해보는 너. 그건 날닮은듯)

꼭 내가 겪어보고 살아본 경험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과 말을 하는지. 하지 말았으면 하면 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했던 실수를 자식을 통해 보는 것은 정말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상대방 역할극을 통한 심리치료보다 더한 날것의 감정을 느낄 것 같다. 사람은 불편한 것을 보거나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그것을 제거하거나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식을 어찌 없애거나, 자식에게서 피할 수 있을까.


입으로는 행동으로는 마음으로는 백 번 천 번 만 번 포기한다고 해도부모는 절대 자식을 포기할 수도, 손을 놓을 수도 없다. 그게 부모와 자식의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 생각에는 나 자신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나의 안 좋은 부분을 닮은 자녀도 인정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잘못도 다 인정하고 어떤 모습이라도 그대로 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교정과 훈육도 본연의 천성을 부정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져서는 부모ㆍ자식 간 사이만 안 좋아지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감정만 상하게 될 뿐이다. 나는 바담풍 할 테니 너는 바람풍하라는 태도와 자세로는 자녀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조금도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바꿔지기 힘든 것들을 먼저 겪어본 사람으로서 잘 인정하고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원동력을 찾고 실행할 수 있을지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자녀와 함께 나누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생각이다.

날 닮았다고 자녀가 나 자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자녀는 모든 것이 다 나와 같은 것이 아니라 다만 나와 많이 닮은 또 한 명의 온전한 인격체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계속 스스로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된다고 상기시켜야 되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마음이 더 쓰이든, 힘이 더 들든 날 닮은 너라는 존재가 있어 행복이 좀 더 큰 것 같다.

날 닮은 너, 내일은 좀 더 즐겁고 행복하고 나보다 더 낫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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