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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스앤러버스 Dec 20. 2021

강민경의 옷장

에디터 일영

  사람마다 자신의 취향을 찾아 헤매는 시기가 있다. 주위를 보면 보통은 20대 초반에 그 시기가 찾아오는데, 나 역시 21살에 나름의 방황기를 맞이했다. 각자 취향을 찾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는 최대한 많은 걸 시도해봐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내가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은 건 옷이었다. 취향이라는 범주에 속한 수많은 것들 중 굳이 옷을 고른 건 취향의 개념과도 관련이 있다. 취향은 내가 향유하는 것인 동시에 남에게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어린 나에게는 음식이나 노래보다 정체성을 빨리 확립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의 순서를 떠올려보면 옷은 처음 만난 순간 한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고, 다른 것은 적어도 옷보다는 순서가 늦기 때문에 나의 취향 찾기 여정에서도 후순위로 밀린 것이다. 우스운 이유로 보일 수도 있지만 21살의 나에게는 ‘좋아하고 잘 어울리는 옷 찾기’가 중요도 상에 해당하는 긴급 사안이었다.


  쥐뿔도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옷을 사 입어 볼 수는 없었다. 뇌리에 남겨놓고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때는 정확히 다비치 강민경이 개인 유튜브를 활발히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회색 후드티에 스키니를 입는 적당한 패션을 추구했던 나에게 흰색 와이드팬츠부터 새빨간 컨버스, 펑퍼짐한 셔츠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면서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확고해 보이는 그의 패션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유튜브를 시작해 준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강민경은 내 기준 유명인 중에서 가장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자 입고 나갈 옷이 고민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아직 본인의 옷 스타일을 찾지 못했거나 한 번쯤 “강민경 옷 잘 입네” 생각했던 분들을 위해 그의 스타일을 가볍고 깊게 분석해보려고 한다. 



‘000’ 하면 떠오르는 것들 

 

  ‘강민경’ 하면 떠오르는 아이템들이 있다. 강민경 뿐만 아니라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 아이템은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되는데, 대개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 첫째는 본인이 애착이 가서 몇 번씩 반복해서 입어 눈에 익게 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유난히 그 사람의 성향이나 분위기와 굉장히 조화롭다고 생각되는 경우이다. 강민경에 적용했을 때 나는 전자로는 핀턱 와이드팬츠와 셔츠, 후자로는 골드 주얼리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핀턱 와이드팬츠는 강민경을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그의 엄청난 핀턱 사랑은 내 옷장에 핀턱 팬츠가 차곡차곡 쌓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진에서도 데님, 베이지, 블랙 등 색깔별로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대중화된 것에 비해 2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굉장히 낯선 아이템이었다. 정장에만 어울릴 것 같고, 강민경만 어울릴 것 같아서 도전해보기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입어보면 끊기 힘든 제품군인 만큼, 혹시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꼭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소해 보이는 이 핀턱(주름)의 기능이 생각보다 많은데, 대표적으로 무턱 바지의 밋밋함을 줄여주고 전체적인 패션에 디테일을 더해준다. 한 에디터는 이를 두고 ‘스타일의 감도를 높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예컨대 두 번째 사진처럼 티셔츠 한 장에 투턱 팬츠 하나만 툭 입어도 들인 노력에 비해 꽤 완성도 있는 룩이 완성된다. 체형 적으로도 턱이 바지통을 지나면서 잡히는 세로 선이 시선을 분산시켜 하체 라인을 보완할 수 있다. 핀턱 팬츠는 골반에 비해 허리가 얇은 체형에 조금 더 잘 어울리지만, 바지 자체의 매력이 크기 때문에 웬만한 체형에 무턱 바지보다 나은 효과를 낸다. 허리가 얇지 않은 체형이라면 얇은 소재에, 밑단까지 쭉 퍼지는 형태의 핀턱 팬츠를 고르면 더 소화하기 쉽다. 만약 핀턱 팬츠를 이미 좋아하고 있다면 소재의 두께별로, 종류별로 다양하게 소장하는 재미를 느껴보시면 좋겠다.


강민경의 핀턱 팬츠


  셔츠는 강민경이 직접 런칭한 의류 브랜드에서 초기 제품으로 선보일 만큼 그가 애정하는 제품군이자 내가 가진 오랜 고정관념을 깨 준 아이템이다. 21살 전까지 나는 상의나 하의 둘 중 하나는 몸에 딱 맞는 핏이어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그게 상하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너무 부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어느 정도 성별화된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강민경은 펑퍼짐한 셔츠에 그보다 더 펑퍼짐한 바지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매치해 나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자유로움’이었다. 스스로 만든 틀에 갇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강민경의 셔츠


  또 셔츠는 공적인 모습과 전문성을 상징하는 옷인 만큼 핏한 가디건이나 티셔츠를 입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데, 옷차림이 중성성의 영역에 가까워지면서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아직 남들에 의해 정의되지 않은 땅을 밟는 기분이랄까…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중성적으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풍기는 알쏭달쏭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딱 붙는 옷을 지양하자는 것은 아니다. 왠지 몸매를 강조하고 싶은 날은 그러면 된다. 기분 따라 그날따라 이미지를 바꿔볼 수 있는 것이 옷의 재미니까! 

  앞서 골드 주얼리는 세 가지 중 유일하게 후자에 가깝다고 언급했었는데, 주얼리를 결정할 때 늘 회자되는 웜톤/쿨톤 여부를 떠나 강민경이라는 사람이 가진 이미지와 가장 맞아떨어진다. 그는 ‘유려하다'는 단어가 떠오르는 아주 얇은 선의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고, 말이나 행동도 속도가 빠르지 않아 전체적으로 우아한 인상을 준다. 골드 주얼리는 고급스러움과 클래식함, 실버 주얼리는 도시적인 이미지와 젊음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화로운 아이템으로 골드 주얼리를 꼽았다. 사진처럼 짙은 자줏빛이나 와인색과 함께하면 분위기는 배가 된다.


골드주얼리를 찬 강민경


몸도 마음도 가벼운 프렌치시크 룩 

 

  이렇게 한창 좋은 레퍼런스를 뒤적이다 보니, 뭔가 전형이 있는 듯한 이 스타일은 대체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궁금해졌다. 어떤 패션을 좋아하냐고 했을 때 내놓을 만한 단어 하나 정도는 알아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인도 개인 유튜브에서 한 번 언급했었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프렌치 시크(French chic)' 스타일에 가깝다. ‘프렌치 시크'란 프랑스인다운 삶과 멋을 뜻하는 말에 룩을 더한 것으로, 한마디로 멋을 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멋이 나는 스타일이다. 그도 그런 것이, 강민경의 패션은 다른 옷 잘 입는다는  셀럽들의 패션에 비해 자연스럽고 따라 해보기 쉬운 편이다. (하나의 예시로 방송인 김나영 님의 패션 감각을 존경하지만, 유명 브랜드의 유니크한 옷을 주로 입어 선뜻 따라 해볼 동기가 생기지는 않는다.) 프렌치 시크 룩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는 영국 출신의 배우 겸 모델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Jane Birkin)’이 있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뮤즈이기도 한데, 화려한 패턴이 있는 옷보다 미니멀하면서도 옷 자체의 쉐입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패션을 추구한다는 점이 닮았다. 

  프렌치 시크 룩의 핵심은 가벼움과 편안함이다. 옷을 입을 때 몸도 마음가짐도 가볍게 가져가자는 것이다. 옷이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인데, 계속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한 옷을 입었을 때와 편안한 옷을 입었을 때 여유로움의 차이는 조금만 인지하려고 하면 알 수 있다. 옷이 몸에 가하는 제약만큼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도 변화한다. 말실수를 하면 안 되거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 자리에서 목과 어깨를 잡아주는 수트를 입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반대로 적용해보면, 몸의 움직임이 편안하면 타인과 인사 한번을 하더라도 더 부드럽게 대하게 된다. 옷이 몸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프렌치시크룩은 이런 맥락에서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입어만 볼게요  


  말뿐인 손민수는 <Robbers&Lovers>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실천을 종용하는 잡지다. 강민경은 고가의 옷도 많이 착용하는 편이어서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안에서 비슷하게 구사할 수 있는 3가지 룩을 소개하려고 한다. 구체적인 브랜드보다는 전체적인 스타일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 


1. 당근니트 룩

주황니트 - 베이지 슬랙스 - 검정 목도리 - 뭉툭 신발 - 하늘색 백

주황니트 스튜디오톰보이
베이지 슬랙스 스튜디오톰보이
검정 목도리 길거리 어딘가
뭉툭 신발 스튜디오톰보이
하늘색 백 여밈

  친구들에게 당근니트라고 불리는 이 니트를 입기 전까지는 주황색 옷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주황색이 의외로 무채색은 물론, 남색, 갈색, 베이지색, 파란색까지 어우러지는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포인트 아이템으로 구비해두시는 것을 추천한다. 베이지색 투턱 슬랙스는 얇고 부드러운 재질의 슬랙스로, 벨트와 뒷주머니 디테일이 좋은 제품이다. 옷장에 심플한 상의를 많이 갖고 계신 분이라면 이런 바지를 하나 준비해서 간편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스타일에 도전해보시면 좋겠다.


2. 남색흰색 룩 

남색 패딩 - 남색 니트 - 아이보리 코듀로이 바지 - 남색 양말

남색 패딩 스튜디오톰보이
남색 니트 H&M
아이보리 코듀로이 바지 스튜디오톰보이
남색 양말 무인양품
*가방은 회사에 매일 들고 다니는 보부상 가방

  남색과 아이보리의 조합은 사람이 가장 깔끔해 보일 수 있는 조합이다. 색은 차갑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이 있어서 여름보다는 겨울에, 면보다는 니트나 코듀로이 소재에서 훨씬 빛을 발한다. 핀턱은 슬랙스에서 주로 쓰이긴 하지만, 코듀로이 소재의 바지에도 어울린다. 도톰한 바지를 핀턱이 한 번 더 잡아주면서 귀여운 인상은 덜고 자칫 둔해 보일 수 있는 소재를 보완한다. 여기에 운동화 대신 부츠를 신으면 귀엽고 캐주얼한 느낌을 더 덜어낼 수 있다. 


3. 크리스마스 트리 룩

초록 코트 - 크림색 셔츠 - 검정 슬랙스 - 독특한 양말 - 로퍼

초록 코트 스튜디오톰보이
크림색 셔츠 빈티지
검정 슬랙스 스튜디오톰보이
독특한 양말 I HATE MONDAY
로퍼 HARUTA

  ‘모나미룩'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이제 모든 사람이 흰 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는 것을 경계하게 됐다. 하지만 흰색과 검정색은 전형적이어서 즐기기 좋은 조합이다. 물론 어떤 흰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고선명 고대비의 흰색 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으면 올드한 느낌이 날 수도 있다. 올드해 보이기는 싫지만 흰색과 검정색의 클래식한 느낌을 가져가고 싶다면 크림색 셔츠를 고르면 훨씬 낫다.

  슬랙스가 길어도 앉으면 양말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룩을 입었을 때는 꼭 가지고 있는 양말 중 가장 예쁜 양말을 신는 것을 추천한다. 센스는 한 끗의 디테일이다.


양말을 보이기 위한 몸부림



나가며 


  학내 교지를 할 때 “덕질하는 글을 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글도 훌륭한 강민경 덕질 글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강민경의 패션을 들여다보았지만 자신만의 레퍼런스는 모두 다를 것이다.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어느 힙한 카페의 사장님이 될 수도 있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 잡지의 아이덴티티처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잘 기억해두고 무작정 따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쨌거나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많이 시도해보고 많이 실패해봐야 자신의 취향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은 가장 쉽고 빠르게 나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옷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싶은지부터 정의하는 순서가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입었을 때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원하는 이미지로 보일 수 있게 하는 옷을 ‘좋은 옷'이라고 정의했다. 각자의 방법은 달라도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그런 옷들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를 바란다.

        




출처: 

모든 강민경 사진 https://www.instagram.com/iammingki/

제인 버킨 https://m.blog.naver.com/gt12kr/221873076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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