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세대, 그 환희와 절망을 동경하게 되는 이유

에디터 일영

by 로버스앤러버스


솔직히 말해보자. '킬유어달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낭만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들, 술집에 모여 앉아 나누는 대화, 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문학가들의 이야기까지. ‘The New Vision’이라는 야망 가득한 반항에 몰두해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내 삶이 좀 시시해 보이기까지 한다. 낭만이란 이런 것 같다. 선망하고 동경하면서도 내가 작아 보이는 것.

하지만 이들이 마냥 환희에 차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그리는 이상을 향해 환희하면서도, 꽉 막힌 기성세대와 제도에 부딪힐 때면 날개가 꺾인 듯이 절망한다. 젊은이들의 이런 무력함은 좀 쌉싸름하다. 말하자면 달콤쌉싸름한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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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관통하는 시대정신


이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감상이 느껴지는 주된 이유는 이들이 특수한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비트세대'는 대공황이 밀어닥친 1920년대 '상실의 시대'에 태어나 2차 대전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 정확히는 전후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삶에 안주하지 못한 채 그 시대의 사회문화 구조에 저항했던 문학인과 예술가 그룹을 말한다. 이들은 약물, 술, 섹스, 재즈 등으로 생기는 고도의 감각적 의식을 통한 개인적인 해방을 주장했다.

이런 비트세대를 부도덕한 망나니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시대론 신봉자다. 사람은 살아가는 시간 동안 시대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며 나의 쓸모나 가치를 고민하는 것과, 비트세대가 자신들의 삶에 안주하지 못한 것은 나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공황에 2차 대전이라니, 한 사람이 동시에 감당하기는 너무나 힘든 역사적 사건들이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이 이들을 자유롭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시대의 혼란으로부터 조금은 붕 떠 있는 것만 같은 문학의 세계 속에서 이들은 무엇을 외쳤을까.


스크린샷 2022-10-31 오후 10.33.20.png 앨런 긴즈버그와 그의 대표작 'HOWL'



긴즈버그의 문학 맛보기


앨런 긴즈버그는 영화에서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연기한 인물이자 비트세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네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들은 너의 일부로 남는다."라는 아주 잘 알려진 문장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영화에서 비춰지는 순박한 너드 이미지에 비해 훨씬 엄청난 사람이다. 지금까지도 비트 세대의 ‘월트 휘트먼’으로 불리며 현대 미국 사회가 잊고 있던 시인의 역할을 일깨웠다고 평가받으니 말이다. 1956년에 발표한 대표작 「Howl」에서는 동세대가 느끼는 정서를 파격적인 에너지로 표출해 새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1950년대의 시대상이 흠뻑 담긴 Howl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그들 가난하고 남루하며, 텅 빈-눈으로 약에 취해 냉수만 나오는 아파트의 초자연적 어둠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도시 옥상을 떠돌며 재즈를 음미하던 자들,

(중략)

그들 창틀에서 절망의 노래를 부르다 지하철 창밖으로 추락해, 불결한 퍼세익 강으로 뛰어내린 다음, 흑인구역으로 도약해 온 시내를 울고 돌아다니며, 깨진 와인 잔 위에서 맨발에 고주망태로 춤을 추다 향수어린 유럽 1930년대의 독일 재즈 음반이 위스키 곡을 마치자 신음하며 지독한 화장실로 던져 올려져, 귀에서 신음과 엄청난 기적 소리의 폭발음을 들었던 자들,

(중략)

그래서 이제 그들이 얼음장 같은 거리로 뛰어나갔다. 생략과 나열과 운율 떨리는 평면을 활용한 연금술이 가져다줄 갑작스런 섬광에 집착하며,


<Howl>의 주인공인 ‘그들’이 <킬유어달링> 속 ‘The New Vision(이하 뉴비전)’임은 명백하다. ‘그들’은 폭발음을 들은 주체인 동시에, 재즈를 음미하며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뉴비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적나라한 자기표현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둘째, 예술가들은 광기를 지녀야 한다.
셋째, 예술은 틀에 박힌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다.


비트세대의 작가들은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뉴비전을 추구하며 창작활동에 매진했다. 나는 이것이 시대가 낳은 반강제적 창조성이라고 생각한다. 상상해보자, 주식 시장의 거품이 꺼져 실업률이 정점을 찍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세계 전쟁이 발발하는 시기에 가장 우스워보이는 것이 바로 질서와 규범이다. 그런 상황에서 문학에서조차 운율과 전통을 고집하는 기성세대가 위선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질서의 가치보다 무질서의 일상화를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광기를 지니고 도덕에 얽매이지 않아야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고, 그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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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비트세대가 있을까?


한국의 문학운동은 어떨까. 비트세대가 살았던 시대보다 조금 더 과거인 1925년 한국에도 시대상을 반영한 예술가 그룹이 있었다. 그 이름도 거창한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이다. 비트 세대가 정치를 멀리하고 아카데믹한 문학을 경계했다면, 한국에서는 그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예술을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결부시킨 것이다.

‘나오라! 시인이여! 미술가- 음악가/ 거리로 나오라! 나와서 소리치라!/ 언제까지나 탑 안의 올챙이떼 되지 말고……// 민중-민중-민중/ 굳세게 나가라! 앞으로-앞으로/ 도시의 민중-향촌의 민중/ ‘모-터’의 음향을 좀더 확대하라!/ 태양의 호흡을 좀더 깊게 하라!’(적구, <가두의 선언>(1927) 중)
‘짓밟히고 주리고 쫓겨가면서도/ 숙명과 전통의 지평선 밑에서 자는/ 동면의 ‘생’과 ‘반역’이 자라나오게 민중에게로’(이호, <행동의 시>(1927) 중)

KAPF(카프)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였다. 식민 통치와 사회주의 이념의 유입으로 혼란했던 시기, 카프는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대한 반역을 요청했다. 사회구조에 직접 맞서는 인물이나 생각을 시에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세대가 개인적인 해방을 주장한 것에 비해 카프 문학에서는 ‘민중’, ‘떼’, ‘음악가’ 등 무리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눈에 띈다. <Howl>에서의 예술가들이 약과 재즈에 취해 재처럼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면, 카프의 시에서는 예술가가 직접 횃불을 들고 거리의 행진에 앞장서는 듯하다.




이상한 동경의 근원을 찾아


비트세대의 예술가들이 바람직한 집단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에 파도처럼 동요하는 그들에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내가 영화를 곱씹으며 추론한 이유는 그들에게 ‘그래도 되는 순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감 없이 예술로 표현하는 자유로움, 그리고 확실한 환희와 절망의 순간들이 부럽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철칙을 세우고 그에 반하는 시대적인 모순들에 저항했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끼면서도 “다 그런 것”이라며 묻고 넘어가는 순간들, 그러면서 타인의 감정의 온도에 나를 맞춰버리는 순간들이다. 2022년이 비트세대가 겪은 것처럼 미치광이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또 다른 의미로 이렇게 곪아가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든 문학은 꽤 괜찮은 표출구일지도 모른다.



출처:

[작가를 ; 읽다 - 앨런 긴즈버그] HOWL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37167)

이대학보 (https://inews.ewha.ac.kr)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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