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하레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성 캐릭터들은 강인하고 아름답다. 또한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소피, 라퓨타의 시타 역시 어리고 여려 보일 뿐, 지브리 작품 속에서 왕자님이 필요한 여성은 없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믿고 함께 행동할 사람을 필요로 할 뿐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굽힘 없이 표현하고,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는 여성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모노노케 히메>의 에보시 역시, 성인이 되어 다시 보는 지금 특히 그러하다. 어렸을 때는 주인공인 아시타카와 산의 편에서, 에보시를 마냥 악인으로 생각하곤 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의 대표상이면서 산업화의 선두에 서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여성이 철기를 만지면 철을 다스리는 여신의 질투를 사 부정을 탄다는 미신이 지배적이었고 한센병(나병) 환자가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던 시대적 배경에서, 여성에게 마을의 제철을 맡기고 한센병 환자를 모아 돌보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입장에서 가히 성군이라 칭할 만하다. 선과 악 중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에게 처음으로 양가감정을 갖게 한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무거운 화승총을 가볍게 들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 그 모습이 내 심장에 콕 박혀버렸다. 사격이 내 취향의 다락방에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던 만큼, 이번 기회에 에보시를 손민수하여 사격을 배워 보기로 했다. 물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모노노케 히메>를 보고 사격을 손민수한다는 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조금 유감스럽긴 하지만, 내 선망 리스트에 오랜 시간 묵혀 둔 소재이니만큼 지금 꺼내어 보기로 했다.
총을 든 여성은 오랜 기간, 여러 차례 취향을 ‘저격’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장 먼저 인식한 것은 영국 드라마 <닥터 후>의 '로즈(빌리 파이퍼)'. 시즌 4 마지막 화에서 레이저건을 들고 짜잔 등장하는 모습에 반가움과 함께 마음 한구석 어딘가 두근거렸다. 시즌 2의 마지막화에서 그는 닥터와의 기약 없는 헤어짐에 눈물을 흘렸지만, 닥터가 적들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강인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다음은 <암살>의 '안옥윤(전지현)'.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결혼식 장면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권총을 쏘는 부분이다. 물론 영화 초반부에 한쪽 알이 깨진 안경을 쓰고 건물 안에서 저격하는 장면도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상관을 쐈습니다.”라는 말로 단숨에 모두가 인정하는 대장이 된 그는 기관총과 권총을 모두 다루는 명사수다.
2D 캐릭터로는 카카오웹툰 <유부녀 킬러>의 주인공 ‘보나’가 취향 저격수의 자리를 차지했다. 남편과 딸로 이루어진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전/현직 최고의 킬러로 활동하는 보나의 모습 간 갭이 오타쿠의 심금을 울리는 포인트이다. 총과 함께할 때의 예민한 표정은 덤.
최근 지브리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도라’도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도라 해적단의 두목으로, 아들들을 포함한 해적단들이 다소 바보 같은 면모를 보이는 것과 달리, 지력과 무력 모두 출중하다. 전개 초반에, 치맛단 안에 왕 큰 총을 숨겨 놓고 있다가 꺼내어 쏘는 장면에서 어쩐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악역인가? 싶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라퓨타와 지상 세계를 지키려는 시타와 파즈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활약한다. 옷장에서 통이 큰 바지를 꺼내서 시타에게 입히는 장면과 마지막에 시타를 꼬옥 안아주는 장면에서는 친할머니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에밀리 블런트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맥킨지 데이비스, <고스트버스터즈>의 케이트 맥키넌도 이런 내 취향을 공고히 하는데 큰 몫 했다. 그렇다면 총을 든 여성은 왜 매력적인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럼없이 무기를 드는 모습이 누구보다 용감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다 보니 이래저래 취향 모음집이 되었는데, 사실 권총에는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진짜 총이든 가상의 총이든, 장총의 형태여야 어쩐지 가슴이 뛴다… 이름도 모른 채 좋아할 수는 없으므로, 내 마음을 흔드는 긴 총들의 정체를 알아보자. 물론 여러 발전과 발명을 거치며 자동소총, 기관총(머신건), 유탄발사기 등 다양한 총기류가 많이 존재하지만,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모든 총을 다루기는 힘들기 때문에 아주아주 간략하게만 알아보았다.
- 권총: 마음이 동하지 않음
- 라이플: 심장이 뜀
- 샷건: 임종
소총(小銃)이라는 이름은 대포 등의 대총(大銃)과 구분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본래 이름인 라이플(Rifle)은 총기 내부의 나선형 홈인 강선을 의미하는데, 시간이 흐르며 스카치테이프나 포스트잇처럼 소총의 대부분을 이르는, 일부가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대체로 현대 군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총.
산탄총은 화약과 구슬 형태의 탄환이 들어가, 격발 시 탄환이 흩어져 발사되기 때문에 산탄(散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근거리 명중률이 높고 낮은 사격 실력으로도 조준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교적 무거운 중량과 반동을 견딜 만하다면 오히려 초보자로 입문하기 쉽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클레이사격으로 많이 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 콘텐츠에서 사냥용 엽총이나 미국의 일상/가정용(?) 총기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익숙한 이미지다. 속도위반 결혼을 의미하는 ‘샷건 웨딩(Shotgun Wedding)’의 이미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왜 총이 길어야 본새가 날까. 나의 개인적인 편견에 기반하면 총은 곧 무기의 대표 격인데, 특히 길고 큰 총들은 그 특성이 더욱 명확하게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일단 총 자체의 길이와 크기에 압도되고, (비록 미디어에서 허용하는 과장법이라고는 해도) 대상에 가하는 위력도 파괴적이다. 특히 스나이퍼 캐릭터가 긴 총을 큰 가방에 넣어 다니거나 착착 조립해서 가볍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도 자주 등장하는 만큼 매력적이다. 군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나로서는 총을 가까이할 일이 별로 없는데, 파고들어 보니 하나하나 나름의 역사도 깊고 특징이 명확하다. 어쩌면 이렇게 미야자키 하야오를 손민수하여 밀덕의 세계로 가는 것일까…?
이제는 손민수로서 실제로 총을 들어볼 때이다. 그러나 사격 도전기로 들어가기 전,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는 큰 소리를 무서워한다. 중학교 시절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첫 드럼 수업을 듣던 날이 내 마지막 드럼 수업 날이었다. 큰 소리가 나면 무의식적으로 눈이 감기고 몸이 움츠러든다. 그런 나에게 사격이란 거의 본능에 반하는, 반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첫 도전은 무난하게 공기총으로 선택했다.
목동사격장은 목동 종합운동장 내 작게 위치한 사격장으로, 공기총뿐만 아니라 실탄도 체험해 볼 수 있다. 실내에 위치한 터라 사로도 짧고 시설도 다소 오래되어 보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네이버 예약 시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 공기 소총 20발을 예약하고 방문했다.
공기 소총의 경우 앉아서 사격하는데, 모래시계 모양의 작은 탄환을 넣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 아주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같이 간 친구와 총을 쏘며 일상 대화도 가능한 정도. 서로 정면만 보고 총을 쏘고 있다는 것만 빼면 거의 티 타임 수준이다.
앞에서 사로가 짧다고는 했지만, 장전 후 조준을 위해 가늠자와 가늠쇠를 들여다보면 뭐가 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사격장에서 제공하는 과녁판 종이 가운데의 까만 원만 점만한 크기로 겨우 식별 가능하다. 나름 이리저리 맞춰 보며 10발씩 총 두 번 사격해 본 결과,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 좋아해서 잘하기보다는 일단 잘해야 흥미를 느끼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앉아서 사격하는 데다 조용하고 반동도 없는 탓에 다소 밋밋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바로 옆에 실탄 사격장이 함께 붙어 있어, 나중에 온다면 실탄 사격도 같이 예약하고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날을 기점으로 게임장에서 사격 게임만 보면 눈 돌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갓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그냥 깔짝이는 정도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낮게 나온 점수 탓을 갖고 싶지 않은 상품에게 돌려 보며, 다음번에는 더 높은 점수를 얻겠노라 남몰래 투지를 불태웠다. 최근 나는 겨울철 붕어빵을 위해 현금을 품고 다니듯 게임장의 사격 게임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동전을 들고 다니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재미에 눈을 뜨게 되면서, 더 다양한 종류의 레포츠 사격을 찾아보게 되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는 산탄총(클레이사격) 외에도 서바이벌 사격, 전투소총 등 여러 사격 체험이 가능하다고 하여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비록 가기 직전에 오른손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나의 사격 체험기는 여기서 1막을 내렸지만, 완치되는 대로 조만간 방문해 볼 예정이다.
사격의 매력은 ‘컨트롤’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입문자로서 단거리 사격만 경험해 봤지만, 거리와 각도, 호흡까지 컨트롤해 가며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를 주도적으로 컨트롤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더군다나 그 미세한 차이가 객관적인 결과로 바로바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빠른 피드백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성격이 급하고 지구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서, ‘단기 집중력’과 ‘빠른 결과’라는 특징을 가진 사격은 취향을 넘어선 취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는 프랙티컬 슈팅이나 서바이벌 슈팅도 즐길 수 있을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어느 것이든 모든 실전 전투 능력은 체력과 근력에서 나옴을 잊지 말아야겠다… 당장 에보시만 봐도 무겁다는 화승총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산과의 근접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총을 들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이미지 출처
[1]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2] 애플 tv 홈페이지
[3] https://en.wikipedia.org/wiki/M16_rifle
[4] https://en.wikipedia.org/wiki/Rifling
[5] https://en.wikipedia.org/wiki/Shotgun
[6] https://twitter.com/007/status/247666033522012160?s=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