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각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원령공주>에는 굉장히 양면적인 존재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에보시'라는 캐릭터도 분명 환경을 파괴하는 나쁜 인간이지만 나병 환자를 돌보고 팔려나온 여성을 거둬들여 먹고살게 해줬다는 점에서 양면적이고요. ‘사슴신’도 추앙받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처럼 관대한 신은 아닌 것 같아요.
Q. 호호는 이런 양면적인 캐릭터들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호호 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잖아요. 너무 당연하죠. ‘에보시'도 그렇지만 사실 원령공주인 ‘산'이란 인물도 자연과 인간 사이에 갈등도 많이 하고, 기로에 서있는 사람이잖아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양면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슴신의 경우는 좀 달라요. 이 작품이 생태주의적인 작품이잖아요. ‘애초에 자연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해석을 본적이 있어요. 그래서 ‘사슴신'으로 대표되는 자연이 관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가치 평가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굉장히 공감이 됐어요. 그런 점에서 ‘사슴신'은 양면적인 게 아니라, 아무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원령공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질까 하는 거죠. 자연에 사는 인간이자, 자연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기도 하죠. 자연을 지키는게 인간을 위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고요. 원령공주와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인간이 가진 양면성도 해소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분명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Q. 공감해요. 그런가 하면 <마녀 배달부 키키>는 다른 작품에 비하면 주제 의식이 옅어보이기도 해요. 혹시 코코는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나요?
코코 <키키>에는 대단한 생태주의나 반전주의적 관점이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키키’라는 한 마녀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냥 어리기만 했던 꼬마 마녀가 홀로서기를 하며 멋진 마녀가 되어 가잖아요. 키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렇게 넘어지고 흔들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고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그런 어린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주변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많이 등장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톰보요. ‘톰보'가 있었기에 마지막에 성장한 ‘키키'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톰보는 키키의 옆에서 때론 친구처럼, 때론 오빠처럼 때론 남자친구처럼(!) 조력자 역할을 해 줬어요. 심부름을 하면서 만난 할머니와, 그림 그리는 언니 ‘우르술라'도 키키의 성장에 도움을 줬죠.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한 인물들을 많이 그려서 좋았어요.
Q. 슬슬 인터뷰가 마무리 되어 가는데요. 좋아하는 장면을 한 가지씩 이야기해봐도 좋겠어요. 한 분 씩 말해주시겠어요?
호호 <원령공주>에서 산(원령공주)이 숲을 들어가는데 숲의 정령인 코다마가 다그락다그락 하면서 따라하는 장면이 있어요. 또 하나는 <센과 치히로>에서 가마할아범이랑 숯검댕이가 돌 나르는 장면이요. 가마할아범은 정말 기괴하게 생긴게 비주얼이 아주 제 취향이예요. 기괴함과 익살스러움이 공존하잖아요. 또 다시 캐릭터 이야기를 하게 됐네요. (웃음).
코코 저는 지브리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센과 치히로> 시작하는 장면인데, 오에스티가 나오며 검정색 화면이 치히로의 꽃다발 화면으로 바뀌는데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해요. 또 <키키>에서 키키가 심부름 하며 바다 위를 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때 딱 ‘바다가 보이는 마을’ OST가 나오는데 그 장면도 너무 뭉클한 것 같아요. 그리고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구름 위의 라퓨타가 나오는 장면이요!!
꾸물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있는건, <센과 치히로>에서 치히로가 가오나시와 함께 전차 타고 제니바를 찾아가는 게 떠올라요. 그림과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내용적인 측면으로는, 하쿠가 치히로에게 입곤 옷을 주면서 네가 누군지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잖아요. 영화 안에서도 직접적 의미가 있어서 좋았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주제 의식 면에서도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리게 되면 나를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각자 지브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굉장히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 선택이네요!
Q. 마지막으로 지브리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은퇴 선언과 번복을 반복하던 미야자키 하야오 옹이정말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요즘의 지브리,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없는 포스트 미야자키의 지브리는 어떻게 될까요?
꾸물 스튜디오 지브리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다고 없어질거라 생각은 안하는데요. 글쎄요, 그래도 여전히 그것은 지브리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분이 만들어 놓은 만들어 가는 메시지에 어떤 면에서든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의 자리가 비워진 뒤에도 동료들이 있을 테니까요.
호호 음, 스튜디오 지브리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작품이 나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청년에게 하고 싶을까? 하는 궁금증은 드네요. 지구가 망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말이죠…
코코 저는 덕후로서 사실 걱정이 많이 돼요. 미야자키 하야오님이 안 계신 지브리는 상상할 수 없거든요. 물론 미야자키가 없더라도 지브리의 세계는 계속 될 테지만 제가 좋아하던 그 지브리의 감성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Q. 저희 로버스앤러버스의 인터뷰 공식 마지막 질문이에요. 혹시 다른 사람의 취향 중 멋있다고 생각했거나, 탐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손민수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저희에게 살짝 공유해주세요.
코코 제 주변에 분홍색을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집에 가면 사방이 분홍색이에요. 한 가지 색을 엄청 좋아해서 그 색만 모으는 게 엄청 신기했거든요. 탐나는 취향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나에 몰두한다는게 멋졌어요. 저도 지브리를 좋아하지만, 그 열정을 본받고 싶네요!
꾸물 저는 편식을 하는데요. 대체로 안먹어본 음식,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싫어해요. 미식을 아는 사람과는 많이 다르죠. (웃음). 거기까진 못되더라도, 음식에 관해서 도전해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호호 요즘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삶에 만족을 하고 있어서… 뭐가 부러운게 없긴 한데. (웃음). 하나 꼽는다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제가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걱정을 한다고 걱정되는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좀 배우고 싶어요.
세 명의 지.영.사(지브리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를 만났다. 지브리 작품의 매력은 꾸물이 말한 작품이 가진 주제 의식 때문이기도 하고, 호호가 좋아하는 작품 속 독특한 캐릭터 덕이기도 하며, 코코가 말한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향수 때문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결국 그 모든 면에서 사람들을 매혹시켜왔다. 이들의 지브리 사랑이 영원하길, 지금 사랑하는 만큼 영원히 그 사랑 변치 않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