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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Sep 30. 2024

첫째가 문제인 듯하다

아가 모습 지우기

첫째가 집에서도 말을 엄청 안 듣더니, 어린이집에서도 제멋대로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방종하는 데에 어떤 거리낌도 없다. 무서운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 이래도 예뻐해 줄거지?’


오늘 외부에서 하는 어린이집 발표장에 가서 녀석이 하는 짓을 보니, 말 그대로 문제아다. 앞에 나와 부끄러운 게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냥 남의 눈치를 하나도 안 보는 것 같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어떤 의무감이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는 듯?!


같은 반 어머님들과 대화를 해본다. 어느 의젓한 아이의 엄마 왈, 안아달라고 해도 잘 안아주지 않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할 수 있게 교육한다고 한다. 그래, 그게 맞는 거다 싶다. 이제 아가가 더 이상 아닌데, 터울 적은 둘째가 있어서 그런가, 자꾸 아기처럼 대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첫째와 둘째를 하원시키고 집 현관에서 둘째 신발을 벗겨주고 있는데, 첫째가 “도와주세요. “ 하면서 앉아 있다. 충분히 스스로 벗을 수 있는데, 둘째 신발을 벗겨주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엄마들은 대체로 첫째를 꾸짖게 된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맘이 안 좋다. 첫째가 아직 어린데, 내가 너무 보듬어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진다.


이렇게 첫째는 둘째 따라 자신의 독립성을 서서히 늦추게 된다. 여기에 나처럼 마음 약한 엄마도 한몫을 하고. 이런 면에서 보면 터울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게 아이들 발달적인 면에선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와는 상관없이 과감하게 첫째의 독립성을 키워 주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우유부단한 탓이다.


둘째를 기관에 보내기 전까진 둘째에게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다 보니, 첫째가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첫째도 아직 어리기에 혼자 알아서 잘하기는 힘들다. 자꾸 인내심을 갖고 가르치고, 잘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걸 잘 못해준 것 같다. 마냥 아기 같기도 하고, 첫째가 많이 말랐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보호본능이 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제도 동네 축제에 갔다가 귀가하던 중 첫째가 2인용 유모차 뒤에 잘 앉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첫째가 힘들까 봐 내 등에 업어주었다. 이런 나의 하나하나의 행동이 첫째의 인내심과 독립심을 막는 건데…! (그런데 마른 아이들은 가볍기 때문인지 좀 더 오래 안아주고, 업어주게 되는 것 같다. 우량아 둘째는 훨씬 어린 시기에 아기띠를 뗐다… 그리고 평소에도 거의 업어주지 않는다.)


아무튼 첫째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내심도 좀 길러줘야 할 것 같다. 워낙 여리여리해서 맘이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의젓한 사내아이로 키워야겠다도 다짐한다. ‘이제 너의 좋은 시절은 다 갔어. 이제 더 이상 아가가 아니야.‘


그러고 보니 한 달 정도 지나면 녀석도 만 네 돌이다. 그런데도 엄마에겐 갓난아기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이는 건, 그만큼 평소에 첫째를 아기처럼 대하고 있다는 의미겠지?! 이제는 받아들여야겠다, 첫째가 어린이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이 늘 자기세상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천천히 깨닫게 해야겠다. 우리 사회에선 그걸 “사회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아가 모습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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