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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an 13. 2023

겨우내 기다렸던...

오랜만에 창가에 들린 빗소리가 계절을 착각하게 한다. 모든 게 헤집어져 멍하니 있었는데, 어느새 가벼운 계절 아래 있는 것 같다. 쨍한 햇살 사이로 찝찔한 바다 내음이 묻은 바람의 참견을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서 기다리고 내가 보인다. 달아오른 체온이 뿜어올린 액체로 등허리에 달라붙는 와이셔츠를 귀찮아하는 내가 아련하다.


두세 달 동안 제대로 된 빗줄기 소리를 듣지 못해서일까? 오늘도 괜히 횡포를 피우는 겨울바람의 짓거리려니 생각했는데, 평소 녀석의 행실치고는 소심하고 가냘프다. 퇴근길 사거리처럼 막막하고 어지러워 무법자가 돼버린, 설익은 계획의 난장이 잊고 있던 소리에 호기심이 이는지 얌전해졌다. 


혹시 비가 오나?


창틈으로 들어오는 냉기가 싫어 둘러 놓은 비닐을 열고 창을 열었다. 제법 세찬 빗소리에 겨울이 벗겨졌다. 커다란 베란다 창을 쉼 없이 흘러내리며 겨우내 싸인 먼지를 씻어내는 빗줄기가 여름 소나기를 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본 빗줄기가 반가워 겨우내 닫혀있던 넓은  창을 열었다. 겨우내 게을러진걸까? 여느 때와는 달리 듣기 싫은 미련한 소음을 낸다.


열린 창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에 소심하게 내민 손바닥으로 빗방울이 솔방울처럼 떨어졌다. 기분 좋은 서늘한 감촉이 한없이 정체되어 갈팡질팡하던 잡념을 지워준다. 너무 많은 걸 그러모으려 욕심을 부렸던 내가 미련스럽게 느껴진다. 닿을 수 없는 붉은 욕망이 어른거려 잡스러웠던 손바닥에 어느새 빗물만 서늘하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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