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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변호사 Dec 14. 2021

재판에서 파이팅이 필요할 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

자전거로 교통사고를 낸 의뢰인이 버스공제조합으로부터 보험 구상금 청구 소송을 당한 건이 있었다. 버스에서 하차하는 승객을 우리 의뢰인이 자전거로 친 사건이다. 분명 우리 의뢰인이 잘못하긴 했지만, 버스도 하차시 뒤에 오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확인하고 승객을 하차시킬 주의의무를 위반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과실을 다투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버스공제조합이 너무했다. 자신들이 승객에게 지출한 내역서만 달랑 뽑아와서는 우리에게 마음대로 과실비율을 산정하고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청구를 하려면, 지출된 금액이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실제 치료비를 지출한 것이 맞는지, 합의금의 산정기준 같은 것들에 대한 세부내역을 알려주고 달라고 해야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자기들이 작성한 서류를 들이밀면서 달랑 돈만 달라고 하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결국 소송에 들어가게 되었고, 상대방은 나이와 연차가 많은 지역에 있는 변호사였다. 나는 당연히 청구금액에 대한 입증이 다 되지 않았다고 다투었고, 지출금액 산출 근거와 상대방의 과실비율을 다투었다. 그런데도 상대방 대리인은 우리가 요구하는 추가 자료도 안내고, 재판장은 뭐 자료를 내라고도 안하면서 그냥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심증을 크게 내비쳤다.


우리 의뢰인이 20대 중반으로 어리고 자력도 없는 것 같아서 어떻게라도 금액을 깎아보고 싶은 마음에 사정을 헤아려서 조정이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판사는 "피고가 돈도 없다는데 조정은 해서 무엇하냐며"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온갖 자료를 뒤지며, 열심히 서면을 써냈고(변호사를 열정적이게 하는 것은 돈 아니면 분노다), 상대방에게 입증 자료도 더 내라고 끝질기게 주장했더니, 판사는 뭘 더 입증하라는 것이나며 곤란해했다.


보통 나는 재판장에서 공손한 편인데, 너무 화가 나서  "그럼 재판장님은 원고의 주장이 다 증명되었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라고 따졌다. 그랬더니 상대방 변호사가 황급히 자기가 자료를 찾아 내겠다고 했다. 결국 상대방이 반박은 했는데, 급박하게 제출하기도 했고, 미흡하기도 해서 또 내가 추가 자료를 내겠다고 또 기일을 잡아달라고 했다. 결국 재판장은 내가 종결을 시키면 조정에 회부해주겠다고 했다.


"재판장님 지난번에 조정은 안해주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이번 기일 종결시키면, 조정 회부해드리겠습니다."


분명 나를 진상으로 생각했겠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조정위원은 그래도 합리적인 분이었고, 조정으로 어느 정도 감액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재판장이 불리하게 진행을 하거나 심증을 드러낼 때는 내가 무슨짓을 하든 불리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진상짓은 다 해보는 것이 맞다는 사견이다. 대부분 통상적으로 점잖게 소송을 하지만, 파이팅이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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