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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May 12. 2022

'분노 중독'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아내가 내게 대항하면서 분노 중독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결혼 후 나는 분노 중독자였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니까 적어도 최악의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나는 여보 눈치를 너무 보고 살아." 라고 말하자, 아내가 발끈하며 말했다. "여보 무슨 소리야. 여보는 눈치 안 보는 사람이야. 내가 여보 눈치를 얼마나 보는지 모르는구나?" 아내 말이 맞았다. 내가 눈치를 봤던 이유는 나 때문에 속상한 아내를 풀어주기 위해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웃으며 풀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말을 건넸다가 상처받을까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항상 아내를 공격하는 말로 찔러놓고 금방 죄책감이 생긴다. 화해도 사실 내 마음 편하려고 한다. 결혼 5년 차가 된 지금에서야 아내가 내 눈치를 많이 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결혼 전에도 나는 분노 중독이었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지만 어렸을 때 나는 순종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담즙 기질의 둘째 아들을 보면 20개월인데도 "아니야!"라고 또렷하게 말하며 온 몸으로 의사표시를 한다. 나는 얼마나 억압되어서 기질이 드러나지 못했던 걸까? 사춘기가 되고 부모를 향해 화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분노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바꿔주는 방법이자 부모를 대항해서 나를 지켜내는 무기였다. 부모와 소통에서 오는 속상한 마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다.


감정에도 중독이 있는데 가장 중독되기 쉬운 것이 '분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전환되는 것처럼 분노 감정도 기분을 바꾸기 위해 사용한다. 분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감정이다. 아직도 아내가 내게 '열등감'이 너무 많다고 하면 화가 난다. 진짜라서 그렇다. 그동안 내 속이 드러나는 것을 숨겨오며 살았다. 이것을 '수치심'이라고 한다. 수치심이 있으면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며 살게 된다. '존 브래드 쇼'는 <수치심의 치유> 책에서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화를 낼 때면 자신은 더 이상 균열 없이 일치가 된 느낌이 들고 스스로가 힘 있게 느껴진다.
화를 낼 때 우리는 자신이 더 이상 부적격자 같고 결점 많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스스로가 힘 있게 느끼려는 이유는 힘이 없기 때문이며 수치를 가리려는 이유는 수치가 진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 분노하며 살았던 것이다. 수치심은 누군가 공격하지 않았어도 무의식으로 자동화된다. 그래서 누군가 건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화를 내며 반응한다. 하지만 결혼 후 이 방법으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이 고통스러워서 못 살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혼하지 않으려면 변해야지.

내가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가 대항해줬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 결점을 변화시키지 않고 참고 살 자신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무조건적인 수용을 경험하게 해 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하지만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대항해주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물론 아내의 대항으로 내가 변화되기까지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결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하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못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맞춰서 변화할 자신이 없다. 그만큼 치열한 부부싸움을 거쳐왔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었다. 아직도 분노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돌이켜 인정하는 속도는 빨라졌다. 혹 분노가 툭 튀어나왔을 때 아내가 "여보 그거 아니야." 하면 1초 안에 대답한다. "응. 좀 그랬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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