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된 첫째 딸이 자기 전 꼭 지키는 루틴이 있다. 책 두 권을 읽는 일이다. 오늘도 귀여운 잠옷 차림으로 어떤 책을 읽을지 책장 이곳저곳을 살핀다. 얼마나 신중한지 오랫동안 고른다. 읽어야 하는 권 수가 딱 두 권이라 그런 걸까? 굳이 두 권으로 정해진 이유가 있다. 어느 날 딸이 책을 좋아하니까 작심하고 이렇게 말했다. "사랑아. 아빠가 오늘은 네가 읽고 싶은 만큼 다 읽어줄게!" 5권, 10권, 15권이 되면서 목이 점점 아프고 너무 피곤해졌다. 나는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약속을 지킬 수 없어 딸에게 사과했다. "아빠가 미안한데, 내일 얼마든지 읽어줄 테니까 앞으로 잠자기 전에는 딱 두 권만 읽자." 오늘 딸이 골라온 책은 '감정' 책이었다.
키즈스콜레 STEPS 아이 테라피북, <코리와 미음 친구들>
책에는 주인공 코리 마음속에 사는 친구들 8명이 등장한다. 씩씩이, 행복이, 버럭이, 반짝이, 사랑이, 덜덜이, 슬픔이, 콩닥이. 어떤 감정인지 알기 쉽게 아이들의 언어로 의인화해서 잘 표현했다. 이 책을 보면서 어른도 이렇게 감정에 대해 쉽게 배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은 단순했다. 코리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이 일어나고 "코리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물으며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해보도록 이끄는 내용이다. 딸에게 "사랑아! 코리는 지금 어떤 마음일 것 같아?" 물으면 곧잘 대답했다. 코리의 마음을 따라 몰입해서 읽던 중, 딸의 충격적인 발언을 듣게 됐다. 책의 내용은 이랬다.
코리는 망가진 로봇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지요. 마음 친구 슬픔이가 파란 눈물을 뚝. 뚝. 뚝. "앙앙, 아빠가 새로 사준 건데..."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렴." 코리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
코리는 아빠가 사준 망가진 로봇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아빠는 울고 있는 코리에게 공감해주고 있다. "그래.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렴." 이 문장을 읽자마자 딸은 이렇게 말했다.
"아~ 우리 아빠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응...? 아빠는 어떻게 하는데?"
"아빠는 시끄럽다고 그만 울라고 하잖아요!"
"그... 그래...?"
웃음이 나왔지만 할 말이 없었다. '감정 그대로 공감받고 싶었구나.' 아이가 말하는 부모의 모습은 정확하다. 이래서 자녀가 부모를 성장시킨다고 하나보다.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딸의 감정을 억압했다. 딸에게 바로 약속했다. "사랑아. 그랬구나. 아빠가 정말 미안해. 네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아빠가 다음부터는 사랑이 마음을 잘 알아줄게!" 아이는 혀를 살짝 내밀며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었다.
감정 치유하며 어느 정도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감정 책 덕분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도 우리 딸처럼 '부모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있었겠지? 감정을 그대로 공감받는다는 일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존재를 수용해준다는 의미다. "사랑아 네가 슬프다고 하면 그것은 슬픈 일이 맞아. 네가 속상하면 그건 충분히 속상한 일이야. 네가 느끼는 것이 맞아. 너를 받아주고 지지해주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