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치명적인 스포일러도 은근하게 있습니다.
3줄요약
"다 좋아 좋은데, 장면의 전환이 너무 빨라서.."
가해자 시선으로 본 80년대...감정이입의 함정
내용은 빨주노초파남보 '색칠도구' 너무 많아
들어가며
"당신네 정보부에 첩자가 있소"
독재정권 하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오랜만에 나온 80년대 배경인 작품이라, 기대가 됐다. 필자는 생각보다 현대정치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필자는 빠르게 핸드폰을 켰다. 타닥타닥 이것저것 적기 시작했다. 빨리 메모해둬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극장을 나서며 핸드폰에 집중했다. 재밌었기 때문에? A little bit, 그렇다면 왜? 사실 정신없었다 영화가.
이정재 감독, 이정재·정우성 배우 주연에 무려 황정민 배우를 까메오로 쓴 문제의 데뷔작, '헌트' 지금부터 살펴보자.
Transition
사운드? 좋다. 긴장감 느껴진다. 연기력? 좋다. 반전? 괜찮다. 지루하지 않다. 문제는 트렌지션.
‘장면의 전환’정도 되겠다. 인물 간의 극한적 대립구도가 영화를 이끄는 중심축이다. ‘사냥’이라는 전개는 모름지기 급박해야하기에 트렌지션의 속도도 빠르다.
헌트는 역사적 시대배경을 담았다. 80년대 흑과백이라는 이분법적인 역사적 상황을 담았고, 가상의 인물인 안기부 에이스 박차장(이정재)과 김차장(정우성)의 충돌이 서서히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 헌트의 절정이겠다.
그렇다보니 두 인물의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야했다. 담는다기 보다는 마치 데칼코마니식으로 짝을 맞춰 이정재 1편 -> 정우성 1편 -> 이정재 2편...순서로 양상을 보여주어 갈등을 첨예화했다. 서론이 길었다. 핵심은 두 인물간의 이 트랜지션이 관객의 입장에서 정신없었다는 것이다.
상당히 힘들었다. 주변인물의 대사따라가랴 배경따라가랴 이정재따라가랴 정우성따라가랴 정신이 없었다. 영화 주제는 명확하다. 대통령 암살테러가 포착되었고 그 배후가 누구냐를 파헤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두 차장의 각기 다른 입장 차이가 있었고, 사정이 있었으며 그리고 목표가 있었다.
세차게 흔들린 동공...너무 많은 '빌드업'
그렇기 때문에 화면에서 보여지는 내용의 양이 적어도 엇비슷해야했다. 사소한 복선이라든가 지나가는 안기부 직원이 '어떤' 차장에게 보고를 하는 등 각각의 장면들에서 서사의 분량이 n분의 1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빠른 감독의 발걸음은 메인카메라는 따라가고 있었을지언정, 관객의 동공은 세차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감독은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다. 소위 말하는 '빌드업'인 셈이다. 이러한 명분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결론에서 관객들의 '탄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헌트'는 빨주노초파남보였다. 너무 다양한 가지각색에 서사에 인물의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산적'해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눈썰미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범인이고 누구의 정체가 뭐고 왜 그랬던 걸까"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처음든 생각이며, 메모장을 꺼내 황급히 핸드폰 자판을 두들겼던 이유기도 하다.
가해자 시선으로 본 1980년대
기존의 7080년대 독재정권을 다루었던 영화들은 주로 '피해자'의 시선에서 관객과 눈을 맞췄다. '1987'이 대표적이다. 헌트는 이와는 다르다. '남산의 부장들'과 같이 '가해자'의 시선에서 극을 전개한다. 다만 좀 결이 다를뿐이다.
한가지 스스로 놀란 점은 나도 모르게 그들이 늘 주장해온 "우린 항상 목숨걸고 빨갱이 잡아!"라는 외침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남파공작원, 흔히 북한간첩이 지근거리에 숨어있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또 마구잡이로 경찰과 검찰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향해 발길질을 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각각의 사실이 존재하는 사실관계이지, 한쪽이 원인이 되어 결과를 야기시킨 인과관계는 아닌셈인데, 영화를 보던 중에는 총을 맞고 수류탄이 터진 현장에서 나뒹구는 안기부 직원들에게 어느새인가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내 자신을 보며, 문득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다. 거리가 멀어보인다. 어쨋든 두 주인공이 명색의 안기부 에이스 차장이니 어쩔수 없던 연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은?
연기자로서 성공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감독으로서도 좋은 결과물을 낸 이정재 감독을 위해 '과속 방지턱' 하나 두고간다. 영화의 걸림돌이다. 반전은 양보다 질이다. 찐한 반전 하나면 충분하다. 인물의 서사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반전이 하나둘셋넷다섯...여러개가 나오면 희소가치가 떨어진다.
'또 뭐가 있었어?'라는 관객의 물음은 새로운 반전을 발견해 흥미를 돋구지만, 정작 중요했던 메인 빌런...아니 메인 반전을 흐릿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밌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보자. 영화 '헌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