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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Aug 31. 2024

불혹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않아야 어른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이들은 전력을 다해 사소한 일에 집중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우리집 최고 어른인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삶에 만족해?"

당신이라고 부른 것에서 '아, 이 분이 지금 기분이 나쁘지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난 수 년간 나는 당신보다 '너'라고 불렸다. '너'의 절친은 두 번째 손가락이다. 가끔은 하늘을 향할 때도 있지만 그 방향이 추후 내가 가야 할 위치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응, 난 지금 삶이 좋아."

미안하지만 만족해 버렸다. 육아휴직을 활용해 어린이집 등하원을 전담하는 가정주부의 삶이 편했다. 비록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반쪽짜리 주부였지만 집 청소를 대충할수록 이만큼 편한 직업이 없었다. 아마 이보다 편한 직업은 전업자녀일 것이다. 아내는 전업주부 당시 자신이 집에서 하는 역할이 최소 200~300만 원의 가치를 지닌 일이라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내가 집안 일을 전담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생활비로 200만 원을 달라고 하는 걸까? 후원금 성격인가?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나 역시 모순 속에 피어난 결과물이다. 모순과 사소함이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는 아내의 잠자리 신음 추임새가 좋았다. 독려를 받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별 도움이 안되는 제스처인지를 구분하는 신호등처럼 보였다. 눈을 감으면 들리는 고음의 소리가 적색이나 녹색 불로 바뀐다. 액정 아래에서 슬그머니 올라오는 사이버 여친들과 달리 현존하는 사람이다. 그 걸로 됐다. 사랑의 모순은 그쯤이면 충분하다. 아이를 탄생시키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한 번 멀어지면 월식처럼 마음 만나기 쉽지 않은 사이, 그 게 바로 부부 아니던가.

주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회사에 복귀하고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퇴사를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라 진작 마음이 떠나 있었다. 아스팔트에 앉아 투쟁 구호를 외쳐야만 2500원이던 점심 식대를 올릴 수 있었다. 20, 30년 전 이야기가 아닌 불과 5~6년 전 이야기다. 시위를 통제하던 경찰도 삼각김밥 하나에 200ml 우유 하나가 전부인 식사 비용에 대해 수군거렸다. 빈정이 상한 여러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뼈를 묻겠다던 직장이었다. 여생의 여유를 위해 불혹즈음에 헤어질 결심을 하고있다. 경제적 자유는 검은 머리 파뿌리 사랑 신화처럼 애초에 서민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구호였다. 노사관계처럼 어긋난 부부 관계 역시 회복이 필요하다. 어쩌면 나는 아내의 전업주부 생활을 부러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이른 은퇴 선언에 아내는 고민이 많아진다.





계절이 바뀌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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