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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Sep 18. 2024

연기

아내는 나처럼 예민하지도 않은 사람이 혼자 예민한 성격으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럼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연기가 성공한 거네."

예민하지 않은척 무던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중학생때 뇌수막염 판정을 받고 내 스스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찻잔 속 태풍, 어머니께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셨고 아들을 선교사로 키우고싶어 하셨다. 하지만 교회에 있는 나는 불편했다. 설교의 허점이 보였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 과도한 해석인지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온 것인지 주보에 적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설교 내용을 메모하는 착실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타인과 생각을 교류한들 그들 또한 신앙인이었고 나만 이상한 생각을 가진 아이가 될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를 감추었다. 가끔은 외향적인 모습으로 다가가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내 심연을 들여다보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아꼈다. 이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나를 나로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다. 불행히 한 명은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하나는 아내가 그(녀)를 싫어한다. 그런 이상한 친구는 앞으로 만나지 말라고 부탁했다. 나는 나를 알아봐주는 친구를 잃고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나의 예민함을 설명해 보았다.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불안을 설명해 주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발기상태의 숨은 생각이 속옷을 옥죈다. 나는 전쟁이 나면 타인을 스스럼없이 죽일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렇게 학습하고 훈련하면 내 스스로가 그렇게 변신할 거라 믿었다. 적과 아군을 나누는 건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지지만 방아쇠를 당긴 후의 책임과 무게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사람들이 판단하는 예민한 사람은 자신의 까칠한 성격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어필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타인을 교인처럼 생각하는 나는 상대가 내 생각에 공감하거나 따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내색하지 않는 사람은 예민함의 범주에 낄 자격이 없다.

나는 미쳐있었고, 아내는 미친 척했다. 결혼할 무렵 내가 아내에게 느낀 감정이다. 아내는 하필이면 평범한 교인이었다. 그 지점에서 다시 나의 예민함이 부활했다. 예수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살기 위해, 다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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