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어플을 눌렀다. 등원 시 기온 3~5도 사이였다. 체지방이 10~20% 사이인 나는 늦여름에도 추위를 느낀다. 깃털이 들어있는 파카를 권했으나 아이들은 분홍색 카디건과 형광 바람막이를 입겠다고 선언했다. 원하는대로 입게 해주었다. 스키 점퍼를 입은 나는 춥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킥보드를 타고 달리느라 얼지 않았다. 아이들의 판단이 옳았다. 하원 시 기온은 등원 때보다 10도나 올라있었다. 아이들은 카디건과 바람막이를 벗고 놀이터에서 놀았다. 추위를 타는 나만 겨울을 대비하면 된다. 걱정이 많은 나만 불안에 떨면 된다. 아이들은 이미 각자의 온도대로 살고 있었다.
하원 후 이비인후과에 들러 아이들 약을 처방받았다. 만성 비염과 중이염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 끝에서 아버지 차량이 다가왔다. 차량이 아이들 근처로 다가오면 미어캣처럼 아이들에게 경고한다. 이번엔 할아버지 차를 조심할 차례였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대상은 늘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술과 여자 그렇다. 과유불급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차량을 향해 인사했지만 썬팅때문에 내부 사정을 알 길 없다. 조수석 창문이 스멀스멀 내려온다. 반응이 늦다보니 추워서 열기 싫으신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나이들수록 반응 속도가 더뎌지는 법이다. 사별 전후로 아버지 차에 계셨던 분이 아이들을 보고 미소지으셨다. 대뜸 "누구야?" 라고 딸이 물었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딸은 엄마를 닮아 목구멍에 말을 담아두지 않는다. 목은 음식이 오가는 통로이지 말을 참아야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참는 건 항문과 성욕뿐이다. 딸은 이미 전적이 있었다. 지난 번 슈퍼에서 마주친 대머리 아저씨를 향해 "엄마, 문어 머리야" 하고 놀라워했다. 존재를 명징하게 해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태초에 할머니가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 로그인 하셨다고 말해야하나, 숨바꼭질을 잘 하는 분이셔서 그동안 들키지 않고 숨어계셨다고 말해야 하나. 애매한 상상이 오가는 사이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친구라 설명해 주셨다.
딸은 할아버지의 두루뭉술한 정답을 듣지 않고 뒷좌석에 탑승하려 했다. 트렁크에는 침구류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지난 번처럼 보도블럭에 침구류를 쌓아두고 판매하러 가시는 모양이다. 플라타너스 나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아버지와 곁에서 이불을 판매하는 아버지의 여사친을 우연히 만난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상하차만 돕고 계시거나 바람잡이 역할만 하는듯 보였다. 십 여년 전 만난 바람잡이가 떠올랐다. 이십 대 대부분을 남미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친구가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러고보니 아내와 접근방법이 유사했다. 아내 역시 뉴질랜드 시민권을 따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비행기에 올랐지만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친구들은 어느새 자리를 잡아가거나 결혼 소식을 전하고 있었는데 경력 하나 없던 아내는 경력 대신 신랑감 사냥을 하러 서울에 머물렀다. 장모님께서는 아내의 꿈을 위해 반지하 원룸을 지원해 주셨고 나는 아내의 원대한 결혼 계획을 위한 먹잇감이었다. 친구는 역삼동 근처에서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잠깐 들려야 할 곳이 있다며 어색한 신인 연기자처럼 말을 이어갔다. 이윽고 한 분이 들어와 강의가 시작됐다. 의사 선생님처럼 자리가 세팅되어야 입장하신다. 강사의 대사가 시작되자 한 분이 테이블에 합석하셨다. 택시도 합승이 사라졌는데 말없이 자리에 앉아 경청하셨다. 시덥잖은 다단계 강의가 끝나자 벅차오르는 감정(이미 표정은 위대한 개츠비다.)을 추스른 동창이 말했다. "우리 엄마!" 합석자는 친구 어머니셨다. 높은 직급에 오르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머님께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집 방향으로 떠나셨다. 아직 높은 등급을 이루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집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사양했다. 방향이 다르니 우린 걸어가겠노라고. 아들이 아버지 연애 사업을 방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한 때는 아버지를 롤모델 삼아 여사친을 만들어볼까 생각했지만 침구류 판매를 돕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꿈을 이불 개듯 접어버렸다. 이성에게 느끼는 끌림보다 자식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기쁨이 더 컸다. 가끔 말도 안듣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레벨이 오르는 아이들을 지켜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개들보다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를 키우나 사람을 키우나 마찬가지다. 내가 사용하지 않아도 수중의 돈은 사라진다. 결혼도 한 번, 사별도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저 자식보다 적게 살다가길 바랄 뿐이다. 자녀들을 독립시키면 해방의 기분은 어떨까. 만세하듯 항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