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꼭 사라지거나 소멸해야 끝이 나는 건 아니다.
끝을 맞이하는 데에는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없을 때. 아무리 발악해 봐도 내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나는 아직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너는 여기가 끝이란 걸 세상으로부터 직시당할 때.
끝이란 그런 거다.
생각보다 별 거 없다.
어렸을 때는 나에게 끝이란 게 없을 줄 알았다.
노력만 하면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고,
현실의 한계란 게으른 사람들의 핑곗거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한테 돈 많이 벌어오겠다고, 언젠가 호강시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때도
그 말은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몇 번이고 그렇게 장담했고, 몇 번이고 내가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병신같이.
한때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같은 영상이어도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아련한 감각이 좋았다.
영화판에는 뚜렷한 길이 없었지만, 그렇기에 기회가 오면 닥치는 대로 잡았다.
기회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악착같이 잡다 보면 결국엔 내 길도 보일 거라 생각했다.
항상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잠들 틈도 없이 바빴다.
갈 수 있는 현장은 모두 따라다녔고 가끔은 무페이로 일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세월은 이미 한참 흘러버렸는데 길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내 길 위에 서 있고, 그 길이 여기서 끝났을 뿐이라는 걸.
내 길은 이미 끝난 지 오래라, 아무리 내다봐도 더 나아갈 수는 없을 거라는 걸.
그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참 미련하게도 오래 걸렸다는 걸.
영화는 포기하고 중소 콘텐츠 회사에 편집자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한 바보 같은 쇼츠 영상들을 편집한다.
허위 정보들이 가득한 자극적인 영상들을 뇌 없는 기계처럼 찍어낸다.
그마저도 AI 편집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외주 업체가 점점 끊기고 있다.
아빠는 퇴직한 지 오래다. 연금이 나오지만 많지는 않다.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쪼개서 매달 용돈을 보낸다. 용돈보다는 생계비에 가깝지만.
엄마 아빠가 먹고 싶다는 건 사줄 수 있지만, 내 명의 집은 없고 차는 중고다.
일도 없이 집에서 놀고먹지는 않지만, 딱히 자랑하고 다닐만한 딸도 아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거나 불행한 건 아니지만,
살고 싶을 만큼 즐겁거나 행복한 건 아니다.
죽지 못해서 그냥 하루 더 살아가는,
그 질려버린 표정을 내 얼굴에서 보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엄마 아빠 얼굴에서 그 표정이 보이는 건
아무리 나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초밥을 포장해서 먹고 있었다.
마트 떨이로 산 싸구려 초밥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고급 초밥도 아니었다.
적당히 가격도 있고 가성비도 있는, 그래도 본가에 온 김에 기분 내려고 산 초밥이었다.
입맛에 맞아하는지 보려고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아빠 얼굴에서 그 표정을 봐 버렸다.
어설픈 초밥 특유의 식초 맛에 물리듯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인생에 물려버린 그 표정.
거울 속에서는 참 익숙했는데
그게 아빠 얼굴에 있는 걸 보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식탁을 엎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행복 좀 하라고.
그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발버둥 치면서 사는데
그냥 못 이기는 척 만족하고 행복 좀 하면 안 되냐고.
꼭 그렇게 불행한 티 내면서 사람 죄책감 느끼게 해야겠냐고.
나도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병신 같은지 다 아는데,
그래도 내가 이렇게 발악하는데,
그냥 눈치껏 행복해주면 안 되냐고.
그 말을 하고 집에서 나왔다.
달궈진 말들을 뱉어낸 목구멍은 시원해지긴커녕 더 화끈거리기만 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토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오늘도 끝난 지 오래지만 끝이 나지 않아서 버거운 인생을 하루 더 살아간다.
그리고 오늘은 유독,
더 버거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