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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Sep 21. 2024

노년의 부모

마지막 막이 열렸다.


엄마 아빠와 셋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갔다. 서로 말은 안 했어도 알고 있었다.

'이번 여행이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 되겠구나'

젊게 사셔서 사회, 문화활동이 많았던 부모님이, 자식들과 오랜 친구가 되어 허허, 깔깔 장난을 치던 그 엄마아빠가 급격하게 노쇠하시는 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속도보다 빠를 거라고는 우리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했던 것이 이젠 엄두도 안 난다.
기능 버튼이 하나씩 꺼져 간다.
일상과 조금 벗어난 일에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단다.
나의 추억을 만드는 것보다
너에게 기억을 남기려 한다.
 아직은 너무 낯선 노년의 부모



오사카 여행은, 하루 중 한 시간이나 걸었을까? 대부분 호텔방에서 보냈으니, 좋게 말하면 호캉스였다.

대신 서로의 침대에 누워서, 십 년간 몇 번을 읊었을지 모를 가족 에피소드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 영화 연예인 이야기,,, 등 우리의 레퍼토리가 돌고 돌았다.


여행 마지막 밤, 맥주로 마무리하며 우리 이야기는 자연스레 깊어졌고 '에라, 모르겠다. 마지막 여행이고 마지막 투정이다.'라는 심정으로 나는 그간 꾹꾹 눌러놨던 감정을 풀기 시작했다. 

서운했던 일, 상처가 된 말들, 이해가 안 갔던 행동들.. 심오한 것부터 유치한 것까지, 살면서 들이받지 않고 참았던 것들이 팡팡 터져 나왔다.


두 분은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나와 같이 눈물을 흘리셨다.



이건 마치,,,
음,,ㅜㅜ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는데?


부모님이 내 말을 다 들어주시고, 그래그래, 맞아 맞아, 토닥이시며 진심으로 미안하다 시는 모습이 갑자기... 뭐랄까.. '그림'처럼 느껴졌다. 이런 사과를 정말 듣고 싶었는데, 속으로 삭이며 떠올리던 모습이었는데,,, 머릿속에만 있던 이미지가 현실에서 보이니 이 또한 낯선 건가.


암튼 나는 부모님과의 마지막(?) 여행에서 그렇게 숨겨둔 말을 했고, 원하던 말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웃으며 멋진 조식을 먹었고, 좋은 여행이었노라며 흐뭇하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서 서서 큰 심호흡을 했다. '후우~'숨을 뱉으며 힘껏 발걸음을 떼어, 한 손은 대문을 밀고 다른 손의 트렁크는 바짝  끌어당겨, 곧바로 <나의 삶>에 복귀했다.  

애들 챙기고, 투닥거리고, 달래고, 치우고, 또 치우고, 간신히 업무 하고,,, 쉼표 없는 스트레스 파장 안으로 말이다. 근데,



왜 후련하고 시원하지 않을까?


할 말했고, 들을 말 들었고, 개운할 줄 알았다. '내 말이 부모님께 화살로 꽂혔을까 봐 걱정이 되는 건가?'  전화를 드려봤다. 두 분 다 너무 반갑고 따뜻하게 받아 주신다.  '아니구나.

정작 나만 후련하지가 않구나.'

'아직 뭐가 더 남아 있는 건가?'  '......'  생각을 다시 해봐도 머릿속에서 다른 건 없다고 한다. '뭐지'


이런 생각이 한참을 몇 주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받았아도, 그 <미안>이 내 삶에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는 너무나 지난 일이니 그 사과조차 <과거> 일뿐이구나.  미안해라는 말만 들었을 뿐,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사는 부모 자식 사이에 그 어떤 as도 있을 수 없으니 계속 서운한  거구나? 결국 나는 부모가 뭘 계속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내 삶에 어떤 도움도 안 되니 진심 어린 사과도 위로가 안 되는 거야.'  


내가 정말 가증스러웠다. 마음이 착잡하기까지 했다. 화살은 그렇게 또 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고 생각했다.




일 년쯤 지난 오늘,
부모님이 사시는 제주도로 가는 길이다.
추석에 가족과 할 일을 다 놔두고
나 혼자서 비행기 안에 있다.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



오사카 공항에서 부모님은 먼저 제주행 비행기로 보내드리고  혼자 돌아가던 그때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이 건강하셨던 거구나.

계속, 계속,,, 앞으로 계속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하게 될까? 너무 싫다. 무섭다'

이런 감정과 함께 버뜩, 머리를 스쳐가는 또 하나의 인식!


'그때 사과를 듣고도 시원하지 않았던 건, 그저 사과를 들은 그 일이 이미 끝난 '막'이었기 때문이었다.'


1막에서 실수한 대사를 가지고 '뭐가 틀렸고 뭘 잘못했다'라고 2막이 한창 돌아가고 있는데 배우를 향해 소리 지르는 감독과 같은 꼴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그다음의 '막'이다.

서운이며, 미안이며, 가증이며, 착잡이며 다 필요없다.



제발 마지막 막이 아니길 기도한다.




Ps

이래서 서운한 감정은 그때그때 풀라고 하나보다.

옛 말 참 틀린 게 없다.

그저 회자되는 격언 같은 말대로만 살아도

잘 풀리는 인생이 될 것인데,

다들 그러지 못해서

다 지난 뒤에 '말'만 남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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