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표 삼계탕
손 원
이틀째 밥상에 삼계탕이 나왔다. 시커멓고 쌉쌀한 아내표 삼계탕이다. 작은 그릇에 담았기에 몇 끼를 먹어도 지겹지 않다. 건더기를 건져낼까 하다가 그대로 씹어 먹었다. 국물에 충분히 우러났겠지만 재료의 원형이 그대로이기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양분이 아깝기 때문이다. 더구나 깨끗이 비우는 것이 아내에 대한 도리일 것 같기도 하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은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다 못 먹을 정도다. 하지만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과 건강식을 균형 있게 하려고 한다. 가족의 건강에 많은 공을 들이기에 맛의 유무를 떠나 즐겁게 식사를 한다. 한여름 더위에 밥맛을 잃을 때도 삼계탕! 한겨울 감기 예방에도 삼계탕! 그러고 보니 삼계탕은 우리 집의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아내표 삼계탕은 적절한 재료 선택과 함께 재료 간 궁합도 잘 맞는 것 같다. 끓일 때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가 정해진 재료를 쓰기에 맛도 비슷하다. 한정적인 삼계탕 재료지만 최적의 구성이란 생각이 든다. 아내가 즐겨 쓰는 재료는 인삼, 건문어, 음나무, 오갈피나무, 통마늘 등이다.
인삼 상회를 하는 여동생, 건어물 상회를 하는 처형이 있고, 직접 농사지은 마늘과 시골 밭 언덕에는 음나무와 오갈피나무가 있다. 이들 재료는 베란다 창고에 항상 있다. 마음만 먹으면 보약 같은 삼계탕을 쉽게 끓일 수 있다. 시골에 계시는 구순의 아버님을 위해서도 수시로 삼계탕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 두고 식사 때마다 데워 드시도록 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도 시골에 가서 한 솥 가득 삼계탕을 끓여 작은 냄비 여러 개에 나누어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아버님은 끼니때마다 한 냄비 씩 데워 드시면 된다.
일을 끝내고 출발하려는데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시키더라 하고 손부한테도 삼계탕 해줘라"며 돈까지 주셨다. 며느리는 지금 산후조리 중이다.
이튿날 아내는 또 삼계탕을 끓였다. 토종닭 두 마리와 각종 재료를 넣고 넉넉히 끓인 삼계탕의 반은 며느리께 보내고 나머지는 식구 모두가 먹고 있다.
밭 언덕에는 거목으로 자란 음나무와 관목인 오가피나무가 있다. 이른 봄 새싹이 손가락만큼 돋아나면 싹을 따고 걷자란 나뭇가지를 자른다. 소쿠리에 가득 딴 싹은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고 잔가지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늘에 말려두면 유용한 삼계탕 재료가 된다. 잘 말린 음나무는 양도 제법 많아 삼계탕 해 먹으라며 지인께도 나눠주기도 한다. 아내는 가끔 언니네 건어물 상회에 들러 미역, 김을 사기도 한다. 이때 재고 난 문어를 얻어온다. 올 해는 임신한 며느리를 위해 미리 문어를 구하기도 했다. 풍기서 인삼 상회를 하는 여동생은 아버님께 보약과 인삼제품을 수시로 보내오고 있다. 이때 수삼도 넉넉히 보내 오기에 언제든지 삼계탕을 끓여도 될 정도다.
옛말에 사위를 백년손님이라며 씨암탉을 잡아주며 반겼다고 했다. 더 정성을 썼다면 인삼을 듬뿍 넣어 삼계탕을 끓였을 것이다. 요즘은 어떨까? 모처럼 사위가 오더라도 치킨 배달을 시켜먹는 시대로 변했다. 그보다는 엄마표 삼계탕을 끓여 놓고 기다린다면 사위는 그 정성에 감동할 것이다. 오래전 생각이 난다. 처갓집에 갔을 때 추어탕을 맛있게 먹었더니 장모님은 내게 추어탕을 자주 끓여 주셨다. 농약과 거리가 먼 골짝 논에 미꾸라지를 직접 키울 정도였으니 그 정성이 평생 기억에 남는다. 울진에 몇 년 간 파견 생활을 할 때다. 지인 집에 갔더니 추어탕을 끓여 주었다. 맛있다며 두 그릇을 비웠더니 사모님이 무척 좋아하시고 가끔 추어탕 먹으러 오라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요즘 인스턴트 시대를 거스럴 수는 없지만 엄마표 음식 한 가지쯤은 특허로 가져 어면 좋겠다. 수고를 모르는 남정네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하겠지만 가정적으로는 훌륭한 유산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종갓집 음식과 안동소주를 비롯한 지역명 주도 알고 보면 집안 살림을 책임졌던 안주인의 지혜와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우리 집 아내표 삼계탕은 건강제일식이다. 쌉쌀한 맛이 자주 먹기는 그렇고 가끔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2021.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