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의 주제는 '현재를 살아라'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내가 아닌데 '나 = 나의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진 걱정과 불안 때문에 인생이 고통으로 다가온단다.
나의 마음과 나 자신을 분리하고 바라봐야 현재를 살 수 있다 한다.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없는 깊이의 책이다.
눈은 글을 따라가지만 굳게 닫힌 철문처럼 그 의미들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나는 내 마음과 내가 같다고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무리 두꺼운 책도 흥미롭고 공감이 가면 금방 완독 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한 장, 한 장이 힘들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한 줄, 한 줄을 이해하며 읽지는 못했으나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을 때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꾸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가,
편집해야 되는 영상이라면 중간중간에 잘라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내 시간의 밀도는 과연 짙은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채우는 현재의 시간은 얼마나 많은가...
그저 과거일 뿐인 나의 과거
꼭 모든 시간이 가슴 벅찬 의미로 가득 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떤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갈 때 나 자신이 얼마나 벅찼었는지,
힘든 과정 속에 있었으나 한참 지나 그 시간 속에 나를 회상할 때 얼마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때때로 내 삶이 공허할 때 그 시절의 열정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던 그런 경험 말이다.
지금 나는 불혹 하고도 3년을 더 살았다.
치열했던 20대와 혼란스러웠던 30대를 거쳐
지금은 뭔가 안정기에 접어든 기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치열했고 혼란스러웠던 젊은 시절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 또한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내 삶의 밀도가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카페인에 민감해져 점점 더 연한 아메리카노를 찾게 되는 것처럼
지금은 독하고 강열한 그 밀도를 이겨낼 자신이 없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단 하루라도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날이 있냐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걱정은 '내'가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거란다.
내 마음이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그저 지켜보고 나는 현재를 살란다.
그렇게 해야 인간이 느끼는 불행과 고통에서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다 한다.
그걸 이룬 사람들이 예수, 부처 등... 우리가 말하는 영성인 것이다.
몇 번은 더 읽어봐야 겨우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인 듯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의미를 깨우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말들이다. 까르페디엠. 현재를 살아햐 한다.
마치 강박과도 같은 이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마치 실을 가위로 자르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회상을 단절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끊어버리는
그런 상태가 어떤 것인지 진정 예수나 부처가 되어야 느낄 수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홀로 있을 때는 공상에 잠기기 일쑤였고
여러 명이서 대화를 할 때도 이내 집중력을 잃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빠져들어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런 나인데 생각하는 걸 멈추라니 당혹스럽다.
하지만 시도는 해보고 싶다.
그래야 인간 본연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니
모든 걱정과 고통이 사라진 그 상태를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을 몇 번이나 더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에 나와, 몇 년 후의 나와, 먼 훗날의 내가 느끼게 될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왜인지
많이 다들 것 같다는 것이다.
다들 명심하라.
오직 지금 현재만이 내가 살아야 할 순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