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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크루와상 Oct 19. 2023

첫 마라톤

소름 끼칠 정도의 전율에는 거짓이 없다.

5킬로 정도를 일상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나는 점점  달리기에 진심이 되었다. 세상은 온통 달리기였다. 달리기 책을 읽고 달리기 영상을 찾아보고 잘 달리고 싶어 근력운동도 스트레칭도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에서 마라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던 마라톤.

심장이 쿵쾅 거렸다. 10 킬로미터 달리기라니! 내가 마라톤이라니!

긴 거리를 달려본 적 없는데 할 수 있을까? 겁도 났지만 일단 해보는 거야. 생각하며 접수했다. 접수와 동시에 디데이를 세어가며 “나 이제 마라톤 하는 사람이야” 하는 들뜬 마음으로 더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5킬로도 겨우 달리던 내가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마음먹은 거리가 1킬로쯤 남으면 어김없이 한 발자국도 더 뗄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에 휩싸여 10미터 앞도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매일 힘들지만 매일 숨이 턱에 차지만 다 달린 후의 기쁨을 생각하며 운동화 끈을 매고 아침마다 바다로 나갔다.




드디어 마라톤날 아침이 밝았다.


운동장 가득 모인 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내 얼굴 같았다. 머릿속이 온통 달리기인 사람들의 기대 가득한 표정과 에너지에 내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가득 모인 이곳이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러웠다.


"5! 4! 3! 2! 1! 출발! "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하늘로 색종이가 날리고 사람들은 소리쳐 환호하며 레이스를 시작한다. 온몸에 처음 경험하는 전율이 일었다. 날아갈 듯 행복했고 소름 끼치게 좋았다. 제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김녕 월정 세화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러너들과 함께 달렸다.


행복하고 신나는 기분이 몸도 훨훨 날만큼 가뿐하게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몸과 마음은 재각각이었다. 평소에 달리던 거리 5킬로를 넘어서자 황홀한 기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페이스조절에 실패한 힘든 몸만 남았다. 제주 동쪽 바다의 강한 해와 바람은 실시간으로 지치게 했고 자꾸만 옆에서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준비가 덜 된 몸은 걷는 사람들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갔고, 나도 자꾸만 걷다 뛰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해안도로 곳곳에서 주민들과 관광객들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 자전거에 신나는 음악을 켜고 길가로 달리며 응원하는 마음, 급수대 봉사자들의 힘내세요! 완주하세요! 하는 말에 정말 힘이 났다. 속도가 느려도 괜찮아. 완주가 목표였잖아.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힘을 내보았다.

조금만 더 달려보자.

하는 생각을 오백 번쯤 하니 저 멀리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가 결승선에서 여보! 엄마! 조금 더 힘내! 외치며 나의 달리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났다.


내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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