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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과사색 Jun 10. 2023

지금 완전한 존재

무언가를 늘 갈망하는 습성이 있다.

나를 평화롭게 해 줄 수 있는 것들,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늘 갈망한다.


가장 어린 기억 속 나의 갈망은 빨간 머리 앤의 단짝 친구인 다이애나였다. 너도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을 울리는, 가장 깊은 곳이 맞닿아있는 친구를 무척이나 원했다. 그때의 나는 10살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이 느끼기에는 꽤 짙고 애틋한 감정이었다. 다이애나 같은 친구를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고대를 하면서 슬픈 마음도 느꼈었다. 그 시절 그때쯤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빨간 머리 앤을 몇 살 때 봤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강렬해서 아직도 마음을 아리게 한다. 갈망은 불확실함과 슬픔을 함께 데려온다는 것을 어릴 때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자란 사춘기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갈망했다. 그곳에 늘 있는 것인데 늘 찾지 못해 헤매었다. 혹은 부족하다며 허기를 느꼈다. 사랑을 갈구하는 것, 특히나 부모님의 사랑을 차고 넘치게 받고 싶은 것은 원초적인 것이라 나 또한 통제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자식이란 아홉을 줘도 부족하다고 떼를 쓰며 기어코 남은 하나까지 다 달라고 하는 존재라더니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대사다), 내가 딱 그 모양이었던 듯하다. 떼를 쓰진 않았으나, 마음이 자꾸만 슬퍼져 혼자서 다독여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서른 초반에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기를 갈망했다. 내 마음과 꼭 같은 동반자를 만나서 언제나 하하 호호하며 늘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집에 도란도란 앉아서 알콩달콩 살기를 갈망했다. 운명이라고 느낄 수 있는 완벽한 사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 행복의 동산으로 데려가주는 사람. 그래서 '우연으로 시작되는 운명'을 놓칠세라 늘 초조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작은 인연에도 스치는 인연에도 해로운 인연에도 늘 '혹시나' 하며 소소하거나 묵직한 진심을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이 가난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면 현재의 내가 불완전해 보이는 착각이 들고, 이루어지지 않아 불행해질 내 모습에 두려움이 든다. 그래서 난 갈망하면서 동시에 슬펐다.


서른 중반, 갈망의 허구를 이제는 안다.


결국에는 다이애나를 만났으며, 그것도 인생의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형태의 다이애나를 늘 만나왔다. 간절히 원했더니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이애나가 없었던 시기에도 사실 난 불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원해서 슬프기까지 했는데, 다이애나가 없는 삶은 비극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누구의 존재의 유무를 떠나서, 소원이 성취 여부를 떠나서, 나는 매 순간 온전했다.


늘 같은 곳에 어마어마하게 자리하고 있는 부모님의 사랑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의 갈망은 허구였다는 것을 안다. 사실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을 정도로 강렬하게 허기를 느꼈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불완전함이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슬퍼했나, 나를 왜 그렇게 안쓰럽게 만들었나, 내가 야속할 뿐이다. 그래서 그때도 나는 사실 온전했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됐음을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인생의 동반자를 갈망하면서 막연함과 불확실함에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안다. 그 누구가 없어도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완전하며, 혼자서도 내 삶을 평온하고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다. 내 존재는 현재 없는 것이 꼭 채워져야만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서른 중반의 빛나는 시절을 회상했을 때, 없는 것을 갈구하며 늘 초조해하는 모습일 수는 없다. 하루하루 완전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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