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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진 Jan 25. 2024

아이와 보낸 3000시간에 대한 소회

출산 이후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 벌써 아이와 3,000시간을 함께 보냈다.


내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돌봄의 대상이 생겼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의 중심은 나에게서 아이로 옮겨갔고, 스케줄의 결정권 또한 아이가 쥐게 되었다.


'육아'의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다.

육아: 어린아이를 기름


나의 지난 3,000시간은 '육아'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처음엔 너무 작고 부서질 것 같아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이 작은 생명체를 내가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또 한동안은 우는 것이 표현의 전부인 아이와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꽤나 울적하기도 했다.


먹이고 치우고 재우는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지나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날들을 마주하게 됐다. 멀리서 보면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똑같은 나날이지만 그 안에서 나와 아이는 치열하게 새로운 매일을 마주하고 있었다.


목을 가누지도 못하던 아이가 목을 가누고,

2분의 터미타임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스스로 몸을 뒤집고,

바닥에 등 닿는 게 싫었지만 방법이 없어 울던 아이는 이제 엎드려 잘 줄 안다.


터미타임 시간이 확 늘지 않아 걱정하는 엄마 아빠 보란 듯이 스스로 낑낑대며 뒤집기에 성공한 아이는 매일 무한 뒤집기를 하며 본인의 속도에 맞춰 잘 자라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아이에게 나의 손길은 아직 필수적이다. 때가 되면 먹여줘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며, 아이가 울음으로 표현하는 모든 불편한 것들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이토록 나에게 의존하는 존재와의 동거라니.


육아하기에도 바쁜 지난 4개월 간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한 엄마는 이것저것 사부작거린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간 함께 했던 시간이 켜켜이 쌓였는지 나의 작은 눈 맞춤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아이의 웃음을 볼 때마다 내가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는지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나의 작은 손길과 찰나의 눈길에도 꺄르르 웃음을 짓고, 이제는 엄마를 알아보는 듯 열심히 안아주는 이모와 아빠를 두고 아이의 눈길은 오롯이 나만을 따라 움직인다.


약 3,000시간을 아이와 함께 했지만 아직 모성애라고 일컬어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누군가와 철저히 구속되어 사랑을 주는 존재는 내 인생에 아이 말고는 또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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