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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r 11. 2021

Chapter 1. 착하다는 덫 (1)

35살부터 호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착한 건 좋은 게 아닌가요     

어릴 때, 친할아버지는 혀를 차시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유림이는 너무 착해서 큰일이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착해서 큰일이라니?‘ 어린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착한 게 뭐가 어때서?’ ‘착한 게 나쁜 건가? 책에서 보면 착한 사람들이 잘 되고 사랑받던데? 내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아빠 엄마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이야기해주시는데... 아니, 할아버지 나한테는 관심도 없으면서 왜 나에게 저런 말을 하지?’라는 반응이 나왔다.          



친할아버지는 본인의 애정과 사랑을 특별히 사촌언니 (큰아빠의 맏이)와 제일 막내인 내 남동생에게 쏟으셨다. 내 기억 속의 친할아버지는 나를 항상 “이 똥꼬야!”라고 불렀고, (손녀에게 똥꼬라니.. 지금도 충격적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고 옛 어른들의 애정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 댁에 갈 때면 항상 동생만 안아주고 예뻐하셨지만 나에게는 그런 애정표현을 하지 않으셨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아빠가 나와 동생에게 웃으며 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신 일이 생각난다. 동생과 내가 초등학교 시절, 매 년 맞이하는 어린이날, 친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봉투를 건네셨는데 동생에겐 10만 원, 나에겐 3만 원을 주셨다고 한다. 아빠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친할아버지에게 돈은 정확히 배분해서 아이들에게 주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친할아버지가 나에게 애정이 없다고 생각해왔기에 친할아버지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때 나는 매우 소극적이고 얌전한 아이였다. 누군가 나에게 말이라도 걸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울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래서일까? 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유림이는 참 얌전하네.” 얌전한 나였지만 그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적으로 들렸다. 왜냐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말 “00처럼 반만이라도 밝았으면 좋을 텐데.”라는 비교하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얌전한 게 나쁜 걸까?’ ‘소극적이면 좋은 게 아닐까?’ 비록 어린아이였던 나지만 어느덧 이 질문이 내 안에서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점점 크면서 “유림이는 좀 예민한 거 같아요.”라는 말까지 추가되어 듣기 시작했다.           

“어우 좀 예민하네. 뭘 그렇게까지 받아들여?” “아니 뭐 그렇게 할 수도 있지. 00 좀 보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또 잘 놀잖니!” 이런 말을 자꾸 듣기 시작하니 내가 무언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나는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아이들이 참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제일 가까이 활발한 남동생이 있었고, 교회에서 제일 친한 세 친구들이 있었다. 조금 나와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 그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그들이 더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 같았고 예쁨 받는 것 같이 보였다. 부럽기 시작했다. 

‘나도... 관심을... 받고 싶은데...’ ‘나도 예쁨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지?’ 어느 순간, 어린 나는 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먼발치에 서서 예쁨 받는 친구들을 보며 나와 그 친구들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유림이는 너무 착하네.”

 학교에서, 피아노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교회에서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종종 이 말을 해주실 때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단순히 “유림이는 착하다.” 란 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착하다”란 단어가 긍정적으로 들렸고, 마치 아무나 받기 힘든 칭찬 배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들이 듣지 못하는, 나만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인정의 말, “유림이는 착하네,”이었다.  점차 그 말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 있기에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화책이 말해준 착한 주인공들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을 보면 모두 ‘착한 아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흥부와 놀부, 심청이, 그리고 여러 동화책에 나오는 착한 주인공들... 대부분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힘들어도 남이 도움을 요청하면 성심껏 도와주고, 공부와 내 할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고, 내가 잘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너무 티 내지 않고, 나를 조금 낮추고, 궂은일을 열심히 하는... 그런 주인공들. 처음에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무시당하지만, 나중에는 제일 행복하게 사는 주인공들.  나는 무릎을 치며 이게 내가 찾던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타고난 기질도 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타인을 도와주고 챙겨주는 일을 매우 좋아하고 지금도 기쁨으로 하고 있다) 한편으로 동화 속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착한 나로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좋았다. 마치 내가 어두운 세상을 밝은 빛으로 감싸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 시절, 읽었던 책들의 주인공들이 좋았고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착하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면, 좋은 기분과 함께 내가 받고 싶은 관심과 사랑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착한 나로 보이고 싶은 마음      

어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인정과 관심, 그리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과 색깔로 받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선물로, 어떤 사람은 직접적으로 말로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 아직 말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서툰 아이들은 통통 튀는 행동을 함으로 상대의 관심을 끌거나, 바른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소극적이고 얌전했던 나는 후자 쪽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 기질 상 바르고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착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은 내가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친구와 호빵을 나눠먹을 때 더 큰 조각을 줄 때의 기쁨, 동생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는 행동, 엄마를 위해 설거지를 해드리는 일...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았고 뿌듯했다.           



타인을 도와주는 일은 나에게 즐거움이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시키시면 (툴툴 대기도 했지만) 웬만하면 다 했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밤마다 장롱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서 바닥에 깔고 자야 했는데 엄마를 도와준다며 낑낑거리면서 이불을 꺼냈다.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 나에겐 즐거움이었다. 아빠 엄마의 행복한 얼굴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함박미소가 지어지며 뿌듯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다들 조용”이라고 말씀하시면 제일 먼저 입 다물고 선생님을 쳐다보며 ‘선생님, 저는 조용히 앉아있어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괜히 친구가 수업시간에 장난칠 때면 선생님께 혼날까 봐 안절부절못했고, 아빠 엄마가 학교에 불려 오시는 일이 없게 하려고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무언가 갖고 싶었지만 아빠 엄마에게 갖고 싶다고 떼쓰지 않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잘 참아냈다.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유림이 착하네.” "정말 착한 딸을 두셨어요!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고 그때마다 난 기분이 좋았다.           


착한 나로서 살아가는 게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내 행위로 인해 내가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고,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았던 것도 있다. 때론 내가 도와줌으로써 능력자가 된 기분, 반짝반짝 빛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좋음이었다.     



      

#나에게도 관심을 보여줬으면...     

초등학교 4학년, 사춘기가 찾아왔다. 당시 나는 매우 힘든 시간을 겪고 있었다. 이때 왕따가 반에서 유행처럼 번졌는데, 우리 반은 한 명씩 돌아가며 왕따를 시키는 그룹이 있었다. 나는 운이 없게도 왕따를 당하게 되었고, 마음이 여렸던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피아노를 배우던 나는 학원 선생님께 예쁨을 가득 받았는데,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하면서 선생님이 바뀌었다. 초등학교 4학년 치고 외모나 덩치가 중학생 같았던 나를 선생님은 자꾸 예중 학생으로 착각하시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셨다) 조금만 틀려도 많이 혼을 냈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  목사님 딸이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교회 집사님들의 피아노 반주 깍두기로 전략했다. 분명 초등학생인데, 어른 성가대 곡을 치다 틀리면 그것도 못 치냐고 혼이 났다. 주눅이 들었다. 1년이 지나고 힘들었던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레 피아노 반주를 좀 쉬면 안 되냐며 울며 말했다. 내가 너무 안쓰러웠던 엄마는 교회 집사님께 “유림이가 반주를 조금만 쉬면 안 될까?”라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말에 발끈한 집사님이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엄마에게 도리어 화를 내고 나에게 다가와 “너 그럴 거면 치지 마!”라고 소리치며 문을 닫고 나가셨다. 그러자 더 주눅이 들고 말았다.      

아무도 날 좋아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어디서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릴 때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유림이 착하네” 란 말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착하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겠지?’라는 마음과 함께 더 참고 더 착한 내가 되어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마음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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