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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0. 송해 국밥

3000원짜리 송해국밥을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선배와 오랜만에 시내(?)에 나왔다. 선배는 강남에 살지만 50여 년 전 시내는 종로와 명동정도였지 강남은 배추밭이었다. 선배는 고등학교 재수를 인사동에서 했으며 나는 대입재수를 인사동에서 했다. 물론 당시 인사동 풍경은 지금과 달랐다. 고서화, 골동품, 화랑, 표구, 미술재료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가득했고 한복 입은 마담이 반겨주는 다방과 예쁜 누나들이 있는 요정도 많았다.

두 명의 실업자가 옛 추억을 더듬어보자며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만나 피맛골,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인사동길, 낙원상가, 송해 국밥집, 탑골공원까지 둘러보기로 했다. 직선거리로는 1km 정도다, 사실 이 길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요즈음 어떤 명칭으로 불리는지 몰라 옛 명칭을 사용했다.


피맛골은 짧은 골목만 존재하지 젊은 취향으로 변해 예전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허름한 막걸릿집과 생선구이집은 자취도 없다. 피맛골은 예전의 정겹고도 구지레한 골목길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깨끗하고 반듯한 골목이 되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신백화점과 화신백화점 자리를 지나 조계사가 있는 우정국로에 접어들었다.

선배는 재수생시절 다녔다던 ‘스타분식’을 찾았으나 있을 리 만무했다. 우정국로에서 인사동길로 접어들었다. 올 2월에 찾았던 인사동보다 활기가 넘친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 평일임에도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꿀타레를 판매하는 가게도 3곳이나 된다. 열심히 영어로 설명하며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2가닥, 4가닥, 8가닥,... 16384가닥.

인사동에 왔으니 전통 찻집에서 차를 한잔하기로 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 2층 찻집, 한복 입은 마담을 가대했으나 마담은 은퇴했는지 중년의 남자사장이 반긴다. 더운 날씨지만 뜨거운 대추차를 주문했다. 실내는 벽에 한지를 바르고 가야금을 갖다 놓는 등 전통분위기를 살리려 노력하는구나 생각했으나 소품들이 눈에 익자 중국풍 인형도 보인다. 간판이 전통찻집이기는 하나 전통차 외에 스무디와 라테도 판매한다. 메뉴는 퓨전이다.


산책코스에 낙원상가가 있는 것은 악기 구입을 위해서다. 현재 선배가 불고 있는 하모니카는 키가 높아 낮은 키의 하모니카를 구입하려 한다. 주인에게 설명하자 풀무로 하모니카에 공기를 주입해 음을 낸다.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악기에 입을 대지 못한다고 선배가 설명한다. 처음 알았지만 생각해 보니 상식적인 이야기다. 음치에 박치이기도 한 나는 음악과 거리가 멀어 상식이 없었다.

선배는 음감이 좋고 나훈아노래를 잘 부른다. 음감이 좋은 것은 현역시절 노래방에서 다진 실력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돈을 치르고 새로 구입한 하모니카로 연습곡을 하나 불었다. 악보도 볼 줄 모르지만 노래를 들으면 비슷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선배는 손바닥을 펴고 쥐고 하면서 찬송가를 연주했다. 문외한이 듣기는 아마추어의 경지를 넘은 수준이다. 그런데 불교신자가 왜 찬송가를 연주했을까? 누군가는 사이비라 하겠고 누군가는 超脫(초탈)이라 하겠지.


지난봄 통영에서 시래깃국을 먹고 싶었으나 아내의 구미가 당기는 메뉴가 아니라 패스한 적이 있었다. 선배와 인사동에서 송해국밥을 먹기로 약속했기에 굳이 통영시래깃국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송해국밥으로 인해 통영에서는 양보하는 좋은 남편의 모습을 보였었다.

송해국밥이라 불리는 낙원상가 옆 ‘소문난 국밥’은 가격이 3000원이다. 식탁 위에는 소금과 고춧가루, 수저통만 있으며 앉자마자 국과 밥이 나온다. 반찬은 신 깍두기 하나로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물은 셀프이며 테이블은 합석해야 한다. 배추우거짓국에 소고기 육향이 나며 소고기기름도 떠있다. 김밥 한 줄에 5천 원인 고물가시대에 가격을 생각하면 훌륭한 구성이다.

배추우거짓국은 적당한 간이 되어 있으나 싱겁게 먹는 내 입맛에는 조금 짰다. 김치 하나만 내어놓는 국밥집은 국도 맛있어야 하지만 米質(미질)도 좋아야 한다. 하지만 가격이 3000원인데 米質을 따지는 것은 양심 없는 짓이다. 어쩌면 무료급식의 퀄리티가 더 좋을지 모르겠으나 3000원짜리 송해국밥도 먹지 못하고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많으니 감사하고 맛있게 먹었다.


노인들의 성지라고 하는 탑골공원, 울타리밖에는 장기 두는 사람들이 많고 한편에서는 막걸리판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임에도 벌써 길바닥에 누워있는 분이 계시다. 해장술이 과했나 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재떨이를 설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지정장소에서 피우고 재떨이에 버리도록 한다면 미관과 화재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금지시키지 못할 바에는 유도, 양성화도 답이다.

탑골 공원은 그늘이 많아 쉬기 좋다. 이상한 것은 男超(남초) 현상이 극심한 것으로 100명 정도에서 여자분 2분만 봤다. 아파트 실버하우스에는 女超(여초) 현상이 두드러져 남자수명이 여자보다 짧기에 발생되는 현상으로 알았다. 탑골공원에 와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오류임을 알았다. 노부부들은 현관을 나서며 할아버지는 땡볕의 탑골공원으로 향하고, 할머니는 에어컨 바람 시원한 실버하우스로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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